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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탄 기차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퇴근길, 하루를 생각하다.

by 심 취하다

고속열차를 타고 거침없이 달리던 직장생활 15년차, 불행히도 환승역에서 기차를 잘 못 탔다고 생각했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저서 '우리, 편하게 말해요' 속 한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올해로 20년차 일꾼입니다. 공채 신입 일꾼으로 시작하여 열정 일꾼을 지나 숙련 일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한 때는 얌체 일꾼으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요리조리 피하며 여유로운 직장생활을 했던 시기도 있었지요. 동료들은 다른 길을 찾아 떠나고는 하였지만, 저는 입사 이후 줄곧 스타 일꾼을 꿈꾸었습니다. 이제는 장수 일꾼으로 진로를 고민하기도 합니다. 아차! 아마 후배들은 꼰대 일꾼이라 생각하고 있을 수 도 있겠네요.


14년 동안 한계단 한계단 꾸준히 올라갔어요. 스타 일꾼을 꿈꾸며. 점점 속도를 높여 남들보다 더 많은 자격을 채워나갔어요. 직장생활을 꽃, 별은 임원이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임시직이다, 개인의 삶을 너무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이유로 임원을 꿈꾸기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것이 대세이긴 합니다.


스타 일꾼이 되기 위해 큰 퍼즐판을 그리고 한조각한조각 채워 나갔습니다. 지방 현장 근무, 운영 시스템 개발 참여, 본사로 발령받아 기획/지원 업무, 이후 영업 등 다양한 모양의 퍼즐을 남들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우수 사원, 사내 우수 강사 상도 받았지요. 전문가 과정, 글로벌 인재로도 선발되어 각양각색의 퍼즐을 채워 나갔습니다. 어떤이는 최연소 공채 팀장이라며 부러워 했고, 누군가는 꽃길만 걷는다며 시기질투와 견제를 하였습니다. 제 앞에는 오직 탄탄한 고속도로, 직선도로만 보였습니다.


완성되어가는 퍼즐을 보며 흐뭇해 합니다. 아... 스타 일꾼의 퍼즐판에 한 쪽 켠이 비워 있네요. 주재원, 해외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자신 있는데 해외생활 만은 내키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본부장님의 권유와 추천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재원을 가게 됩니다. 마지막 퍼즐조각, 보물을 찾으로 가는 마음으로.

주재원, 저에게는 잘못 탄 기차 같았어요. 업무, 인간관계 모든게 제 생각과 달리 어긋났어요. 숙련 일꾼, 열정 일꾼이라고 자부하였는데 14년 동안 모아온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소멸되어 갔습니다. 그 넘치던 자신감과 자부심은 어디에 간 것인지? 주재원 복귀 후 맞이하는 현실은 신입 일꾼에게 주어지는 하얀 캔버스를 받은 느낀이었어요. 14년동안 정성스럽게 하나씩 맟추어 온 퍼즐판은 주재원 이라는 조각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졌지요.


새롭게 주어진 하얀 캔버스. 한동안 잘못 탄 기차를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 되어집니다. 하루하루 지나며 하얀 캔버스를 다시 그리기 시작합니다. 하얀 캔버스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며 깨닫습니다. 만들어진 퍼즐틀에 남이 만들어놓은 조각을 찾아 끼워 맞추는 삶보다 하얀 캔버스에 나의 삶을 그려나가는 것이 더 의미있게 행복할 수도 있음을.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잘못 탄 기차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아직도 거의 다 모았던 퍼즐 조각과 스타일꾼의 퍼즐 판을 가끔 그리워 합니다. 아까워 합니다. 잘못 탄 기차가 완성 직전의 퍼즐판을 망가트려지만, 새로이 그릴 수 있는 하얀 캔버스를 주었음에 감사합니다. 더 늦기 전에 삶을 다시 생각하고 풍요롭게 해 줄 하얀 캔버스.


잘못 탄 기차를 떠올리며 과거를 후회하고 계신가요. 잠시 목표로 했던 도착지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고 다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 탄 기차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해 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축복일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이 문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곳은 괜찮은 경유지 또는 환승역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내 인생의 튼튼한 환승역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희망의 불씨를 살립니다.

지금 어떤 기차를 타고 계신가요?

잘못 탄 기차, 완행열차, 고속열차. 어떤 기차에 타고 계시든 여러분의 진한 하루를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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