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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배려가 때론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새벽 축구경기

by 심 취하다

새벽 1시 30분 사우디와의 A매치 축구 경기가 있다. 초등학생 아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아빠와 달리 축구를 하는 것도, 축구 선수에도 관심이 많다. 축구 경기 전날 밤 11시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들은 잠들지 못하고 축구 얘기를 계속한다.


아빠, 새벽 1시 30분에 꼭 깨워주세요


새벽에 깨워준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자정을 넘어 아들이 잠들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니 00시 40분이다. 1시 30분에 알람을 맞추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새벽에 아들을 깨우지 않는 것이 아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첫째, 새벽에 축구를 보면 하루종일 피곤할 것이다. 둘째, 아침에 못 일어나면 엄마한테 혼날 것이다. 이것이 아들을 위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5시 30분 기상하여 출근 준비를 한다.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보니 축구경기가 생각났다. 검색해 보니 1:0으로 우리나라가 이겼다. 아들이 이 경기를 실시간 시청하였다면 전반 32분 조규성의 결승골에 소리를 질렀을 모습이 떠오른다. 이겼으니 기분 좋아서 깨우지 않은 아빠를 용서하겠지라며 출근길에 오른다.


8시 20분 휴대폰이 울린다. 아들이다. 불안하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아들이 울먹이며 말한다. '왜 깨워주지 않았어요? 정말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계속 흐느낀다. 원망하는 마음이 전화기를 통해 내 가슴 깊이 스며든다. 얼마 전에 사달라고 조르던 백호 인형도 필요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아차. 나의 배려가 너에게 상처가 되었구나. 너에게는 아빠에 대한 실망이 되었구나. 새벽 축구경기로 피곤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너의 선택이고, 엄마에게 꾸중을 듣게 되는 것도 너의 몫인 것을. 나의 어설픈 배려로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구나. 이제 곧 중학생이 되어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할 일이 많을 너에게 시행착오를 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나의 배려가 방해를 하였구나.




아들과의 일을 반성하며, 20년 직장생활을 돌아본다. 열정 일꾼이라며 어설프게 신입 일꾼을 배려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숙련 일꾼이라며 일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열정 일꾼에게 훈수 두었던 일들이 되새겨 본다. 어느 순간 꼰대 일꾼이 되어 후배에 대한 배려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충고를 했던 나를 돌아본다.


배려심 많은 직장인 선배라고 스스로 여겨왔다. 후배를 따뜻하게 감싸주며, 일은 냉정하게 추진하는 리더의 모습으로 미래를 그렸다. 아들과의 일을 생각해 보니, 내가 했던 어설픈 배려로 상처받았을 동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몰려온다.


나의 배려는 친절이고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남의 배려는 참견과 훈계질이라고 여겼다. 오늘 아들에게서 배운다. 나의 배려가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음을. 자아만족 또는 자아도취의 배려였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배려는 아닌지 먼저 의심하라.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일 수 있음을 생각하라.

꼰대 일꾼이 되지 않기 위해 퇴근길 배려를 다시 생각한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있는 데로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것임을.


아들아. 미안하다. 앞으로는 너의 선택을 존중할게. 우당탕탕 너의 시도와 시련을 응원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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