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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전환 ;경주마에서 야생마로

퇴근길, 하루를 생각하다

by 심 취하다
당신은 경주마인가? 야생마인가?


퇴근길 불현듯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의 칼날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잘 조련된 경주마로 살아왔구나!"


깨끗한 마구간, 평탄하게 정비된 연습용 트랙, 잘 짜인 식단,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오직 빨리 달리기 위해 조련된 경주마. 오직 앞만 보고 달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연을 느껴서는 안 된다. 오직 기수의 채찍질에 따라 결승전을 향해 힘차게 달려야만 한다.




공채 일꾼으로 입사하여 20여 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동기보다 앞서 결승전에 도착하기 위해 조련사에게 순응하며 잘 보이려 애썼다. 주위 동료 또는 뒤쳐진 자를 돌아보면 채찍질당한다. 기수의 신호에 따라 앞으로만 질주하듯 회사와 상사의 지시에 따라 경쟁하듯 앞으로만 질주하였다.


미생 part2. 199화, 오성식 부장의 독백을 읽다 보니, 경마에서 은퇴하는 경주마의 진로가 교차되었다.

우리 일꾼도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질주를 하다가 언젠가는 은퇴를 하게 된다.


나는 앞으로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정년(停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잣대로 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 미생 part2. 제199수, 오성식 부(사)장의 독백 中

경주마는 현역 기간 동안 모든 말들이 부러워할 만큼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경주에 나가 돈을 벌기에 식단이나 관리법에 있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찬란한 현역 시절과 달리, 은퇴 후 경주마의 진로는 비참하다. 만약 다리가 부러져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되면 도축된다. 건강히 은퇴한 말들 중 일부 경주마만이 승용마, 소품마, 관상마로 근근이 살아간다.


우리 일꾼의 일생으로 다가온다. 일꾼은 회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성과가 좋으며 편히 업무 지시할 수 있는 대리, 과장, 차장 시절에는 회사가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인재로 대우받는다. 최고의 대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동기들보다 앞서 나가고자 앞만 보고 달렸다. 뒤처진 동기들을 보며 패배자로 생각했다. 벌판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생마들을 삶의 목표도 없는 한량이라 여겼다.


전성기를 지나 일꾼의 젊은 시절 노고와 기여의 흔적은 흐릿해진다. 회사는 과거의 업적을 모른척하며 점점 회사 밖으로 일꾼을 밀어내기 바쁘다. 경주마의 은퇴처럼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잣대로 내 일을 그만두어야 함을 맞이할 나이가 다가옴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여야 한다.


은퇴한 경주마를 떠올려 본다. 조련사에 길들여진 경주마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힘겹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존 활동조차 망막하다.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도 문제이다. 앞만 보고 경주할 때는 휴식시간이 간절했건만 은퇴한 경주마에게는 이제 주어진 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 야생마가 부럽다. 온전히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야생마가 부럽다.


아! 나는 경주마처럼 살아왔구나!


축의 전환. 경주마가 아닌 야생마로서의 제2의 인생을 꿈꾼다. 언제 가는 회사에서 만들어 놓은 잣대로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일꾼으로서 회사를 위해 잘해왔던 일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앞만 보고 달리며, 일꾼으로서의 삶 이후를 애써 외면했다. 경주마로서의 최고의 대우에 취해 있었기에.


야생마로서의 삶을 준비한다


나를 감싸주던 회사를 떠나 언젠가는 야생마처럼 스스로 초원으로 누벼야 한다. 이제는 야생마로서의 삶을 하나씩 준비해 보려 한다. 초원을 기꺼이 환영하여 맞이할 수 있도록.


배부른 경주마가 아닌 행복한 야생마로서의 삶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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