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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든가 Jul 18. 2022

요즘 해외 맥주 말고 국산 맥주를 마십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국산 맥주에 대한 생각 변화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은 다시 밤거리로 나왔다. 그동안 나오지 못했던 것에 대해 한이 서렸던 듯, 못 놀았던 몫까지, 못 마셨던 술을 마시는 사람들. 코로나 시기 때 새벽에 산책을 나오면 참으로 고요했었다. 거리두기가 풀린 지금, 풀이 죽었던 네온사인들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야경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mouse_ship

그러면서 반가운 곳 역시 손님을 맞기 시작했는데, 바로 편의점이다. 나는 술자리를 가지기 부담스럽고 사람과 진솔한 얘기는 하고 싶은 날엔 편의점에서 간맥이라는 개념으로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지갑을 가볍게 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 자리, 편의점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편의점에는 언제나 국룰인 프로모션이 있다. '해외 맥주 4캔 만원'이라는 프로모션이다. 최근엔 11,000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1캔씩 사면 4,000원인 맥주를 4캔을 사면 최대 5~7000원 할인을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면서도 합당한 소비인가. 


친구들과 맥주를 고를 땐 어느 때보다 고심한다. 술자리와 달리 처음처럼, 참이슬 같이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형형색색의 맥주캔이 편의점 냉장고에서 술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 맥주는 고급스러운 밀색으로 첨가물 없는 담백한 맥주를 표현하고, 일본 맥주는 폰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간단하면서도 힘 있는 글씨체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그밖에 필스너 우르켈이라든지, 블랑 1664, 기네스 같은 네임드 맥주들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바다 건너온 비싼 몸들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4,000원이나 하는 이 비싼 몸들을 4개를 사면 10000원으로 퉁쳐준다니, 누구라도 넘어갈 상술이다. 누구도 이 맥주들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이 맥주를 바구니에 넣는 사이, 반면 편의점 냉장고 맨 위칸에 보통 자리하고 있는 국산 맥주들의 취급은 처량하다. 


요즘 국산 IPA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수제 맥주가 나오고 있고, 수요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맥주 하면 카스 혹은 하이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언제나 해외 맥주에 밀려 간택을 받지 못한다. 이들의 가격은 4캔을 사지 않아도, 4캔을 사면 10,000원으로 맞아떨어지는 2,500원이었다. 사실 4캔을 사도 카운터에 판촉이라는 문구가 뜨면서 무자비한 할인을 보여주는 해외 맥주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어 보인다. 



 내가 이러한 국산 맥주에 달리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사소한 이유였다. 1차에서 너무 많이 마셔 과음할까 걱정한 나와 내 친구는 4캔을 사기엔 투머치고 2캔을 사기엔 돈이 아깝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어찌 보면 획기적인 제안을 했었다. 국산 맥주 2캔을 사면 딱 5,000원으로 끝낼 수 있지 않겠냐라고 물었을 때 친구의 반응은 탐탁지 않아했었다. 


항상 해외 맥주를 찾아오고, 거기에 대해 맛 평가를 하며 맥믈리에 시늉해온  우리는 오히려 국산 맥주는 생소했다.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는 편견이 이미 우리에게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외에서 온 게 무조건 우월하다는 문화사대주의가 국산 맥주에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국산 맥주는 오줌을 차갑게 식힌 맛이라고 악평을 했고, 나도 그 정도인가 까지 생각하며 일단 사보자고 설득을 하는 이상한 모양새였다. 


이런 편견은 '소맥'이라는 우리나라에서만 마실수 있는 고유한 술 문화가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보통 소맥을 탈 때는 국산 맥주와 소주를 섞게 된다. 소맥 말 때 해외 맥주로 말 아드 시는 분은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국산 맥주는 소맥 제조용 맥주로 인식이 되고, 진정 맥주의 풍미를 즐기긴 위해선 온전한 맥주 그 자체인 해외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관념이 자리 잡은 걸지도 모른다. 


결국 내 설득이 먹혀들었는지,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사 마셔보는 국산 캔맥주는 여타 해외 맥주와 별 다를 바가 없는 맛이었다. 솔직히 나는 국산 맥주가 뭔가 더 내가 원래 알고 있는 맥주 맛과 가깝다고 느껴졌다. 친구도 생각 외로 나쁘진 않다며 평가를 했다. 쉽게 말해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오줌 맛이 난다고 미리 단정 지어 놓았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국산 맥주는 언제부터 이런 스테레오 타입을 갖게 되었는지 씁쓸했다.


어떻게 보면, 국산 맥주는 사실 충분히 대우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무엇보다도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브랜드가 아닐까 한다.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카스의 맛을 극찬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는 고든 램지도 어쩔 수 없이 영국인이라서 입맛이 이상하구나라는... 웃프면서도 국산 맥주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댓글도 있었다. 


이런 걸 생각해 봤을 때, 해외 맥주는 물 건너왔다는 이유로 비싸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사실 4캔 만원 프로모션을 이용하면 한 캔당 2500원 꼴인데, 이는 카스나 테라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맥주 자체의 퀄리티를 단순 가격으로 나누기엔 너무나 근소한 차이였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만약 카스가 물 건너서 일본이나 미국 마트에 진열이 되면 과연 2500원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내에선 프로모션 할인을 받지 않아도 2,500원인 국산 맥주가 해외에 가면 발칙하게 4달러로 가격표를 둔갑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맥주에 대해 반대로 생각을 전환해보면 국산 캔맥주도 물 건너 해외 가면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고, 고든 램지 같은 셰프가 좋은 맛이라고 평가할 정도면 한번 그 편견을 내려놓고 마셔봐도 좋지 않을까. 우리가 좋다고 사는 해외 맥주도 그 나라에서는 심한 저평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 맥주 특유의 이미지와 친근함이 좋아 자주 즐겨 마신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국산품을 애용합시다.'라는 슬로건을 지키는 것 같아 뿌듯함도 있다. 친구들은 아직 날 이해 못 하지만, 언젠간 국산 캔맥주로만 4캔을 살 날이 곧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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