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1)
가장 먼저 생각해볼 질문은 맨 처음 제시한 댓글에서 말한 것처럼 왜 생명을 앗아간 사람에게 무조건 사형을 선고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형이 선고되려면 먼저 검찰에서 사형을 구형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우리 나라에서 사형이 구형될 수 있는 범죄들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우리 나라에서 사형이 구형될 수 있는 범죄들은 형법, 군형법,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다. 먼저 형법상 사형 구형 대상 범죄를 살펴보면, 내란 및 외환의 죄 등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와, 살인, 강도살인, 강도치사, 인질살해 및 치사 등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강력 범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군형법상 사형 구형 대상 범죄에는 군사반란 및 이적행위(간첩행위 등), 지휘권 및 군기 유지 관련 범죄(지휘관이 휴전 고지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전투를 계속하거나, 적에게 항복한 경우나 군무이탈 등), 그리고 군 내부의 폭력 및 살인 범죄(상관살해, 초벙살해) 등이 해당된다.
특별법상 사형 구형 대상 범죄를 살펴보면, 약취-유인 후 살해/치사 범죄의 경우나 강도상해 등을 재범한 상습범죄의 경우이다. 또한 특별법 중 국가보안법에도 사형 구형 대상 범죄가 있는데,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수괴이거나 간부 등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경우가 이에 해당하며,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살인, 강도살인 등)를 한 경우에도 해당 형법 조항에 정한 형에 처해지게 되어 사형이 구형될 수 있다.
정리해보면, 군형법에는 군 특성에 맞추어 집단의 질서 유지와 전시 상황의 엄격한 규율을 위해 사형이 구형될 수 있는 범죄들이 규정되어 있고, 민주주의 수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에도 특수한 상황들에 대해 사형이 구형될 수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부분은 살인과 치사 등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강력 범죄들이 사형 구형 대상 범죄에 포함되며, 같은 맥락에서 상해의 경우에도 상습범죄인 경우에는 사형이 구형될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보통 사형이 구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인을 하는 것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며, 이때 이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은 살인자의 목숨으로 그가 끼친 폐해를 갚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명을 생명으로 갚는다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 고대부터 있었던 것이며, 함무라비 법전과 구약성경에는 이와 같은 탈리오 법칙(Lex talionis;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피해를 입은 만큼 가해자에게 동일한 해를 가한다는 동해보복 원칙)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며, 이러한 그렇다면 살인 범죄의 피고인들에게는 모두 사형이 선고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살인죄에 대해서 사형이 구형되는 비율은 정말 매우 낮다. 대한민국 검찰이 1심에서 사형을 구형한 피고인 수는 2013년 21명에서 2022년 9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모두 살인혐의인지는 확인이 불가하다). 이러한 수치는 사형 구형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명확한 추세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형 구형은 왜 줄어들고 있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 같겠지만, 사형 집행의 중단이 결국 사형 구형 건수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니 재판부에서는 되도록 사형 선고를 하지 않게 되고, 이처럼 사형을 구형해도 거의 선고되지 않는 사법체계 내에서 검사가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형을 구형했다가 피고인에게 다른 형이 선고된다면, 심지어 무기징역이 선고되어도 검찰 입장에서는 ‘이기지 못한’ 사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이 사형을 아예 구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흉악한 범죄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엄벌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상징적으로라도 사형을 구형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형이 구형된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기 위해서는 1심에서 구형된 사형이 선고되어야 하고, 피고인 측이나 검찰 측에서 항소를 하게 되면 2심으로 이어져 2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고하는 경우 3심으로 이어져 대법원에서 확정되어야 최종적으로 이 지난한 과정이 끝나고 피고인은 사형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과 재판부가 사형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검찰은 엄벌주의 기조나 범죄 억제 효과를 고려하여 사형을 구형하지만, 재판부 즉 사법부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서의 현실과 인도주의적 측면을 고려하여 매우 신중하게 사형을 선고한다. 따라서 사형이 구형되더라도 최종 선고까지 이어지는 것은 어려워지고, 결국 사형 구형과 선고 간에 괴리가 발생하게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