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의 사형을 왜 집행하지 않는가

사형제도(2)

by 홍구일

사형수의 사형을 왜 집행하지 않는가


(앞의 글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으시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본 모든 단계를 거쳐 어렵게 살인 범죄를 저지르는 피고인에게 최종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사형수의 사형이 실제로 집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 집행이 중단되어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사형 선고가 적게 되고 있는 것 자체도 결국에는 사형이 실질적으로 집행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따라서 사형제도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이번 파트에서는 이 부분, 즉 사형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윤리적 고민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에서는 사형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집행을 명령해야 하며, 그 명령이 있은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사형 집행에 대한 강제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거의 2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형 집행이 중단되었다. 다음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현재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미짐행 사형수들은 53명이며[1], 이들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영철과 강호순, 정두영 등이 있으며 이들은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다른 사형수들도 부산구치소,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 광주교도소 등지에 분산 수감 중이다.[2]


80년도 이후 사형수 확정 등 자료 (2025. 1. 2. 기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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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마지막 사형 집행 시기는 1997년 12월 30일이며, 이때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사형 집행이 이 시기부터 중단되었다는 것은 특수한 의미를 지니는데,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신군부 집권 시기에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었고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은 그를 사형제 폐지론자로 이끌었다. 누구나 탄압에 의해 불합리한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만약 사형이 바로 집행되었더라면 구명 운동과 별개로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 이러한 충격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형제도에 반대하게 했다.


전세계에 걸쳐 사형제도는 점차 폐지로 기울어가고 있다. 실제로 국제앰네스티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말을 기준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12개 국가에 달한다.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도 다수를 차지하여,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는 16개국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일본, 중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여전히 사형이 활발하게 집행되고 있어, 사형제도에 관한 논의가 단순히 문화적 성숙도의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사안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형제도는 어떠한 목적으로 발생한 제도이며, 왜 일각에서는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일까?



사형제도 찬성론 vs. 사형제도 폐지론


사형제도는 언제, 왜 등장했을까


사형제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면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에 응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모여 같이 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타인을 공격하거나 착취하는 행위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이를 제재하는 힘이 부재하는 경우 사회 질서가 무너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표현은 법과 질서가 세워지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싸우는 상태를 의미하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제시한 개념이다. 홉스는 이러한 무질서, 공포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회계약 맺어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자연권을 일부 양도하여 강력한 주권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국가는 법을 제정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들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즉 사형제도도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해 도입된 형벌제도인 것이다.


한편 생각해보면 사형제도가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범죄에 특히 많은 연관성을 가지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유명한 기원전 18세기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30여 개의 범죄에 대해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데[3] 그 중 몇 가지 규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소하여 살인죄를 씌웠으나 증명할 수 없다면, 고소한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집에 침입했다면, 그들은 그를 죽여 그 침입한 구멍 앞에서 그를 매달아야 한다."와 같이 거짓으로 살인죄를 무고한 경우나 강도 행위, 신전이나 궁전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간주되어 사형에 처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기혼 여성이 간통을 저지르다 잡히면 간통한 남성과 함께 익사형에 처해졌고, 아들이 아버지 사후 어머니와 동침하여 근신상간을 저지르면 화형에 처했다. 미성년자를 유괴하는 행위도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또한 특이하게도 직업윤리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사형이 적용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건축가가 집을 지었으나 부실하여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사망한 경우, 건축가는 사형에 처해졌다. 만약 집주인의 아들이 사망했다면, 동해보복 원칙을 적용하여 건축가의 아들을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며, 신분에 따라 다른 형벌이 적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살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벌해야 한다는 별도 규정을 마련해두지 않았는데, 아마도 살인에 대해서는 사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관습법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소하여 살인죄를 씌웠으나 증명할 수 없다면, 고소한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규정이 1조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살인과 살인죄 관련 무고를 매우 엄격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 존치론의 3가지 논리


이처럼 사형제도는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제도가 현대까지 유지되는 것에는 탈리오 법칙을 넘어서는 논리가 있을 것이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도 존속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로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것일까?


1) 응보주의 : 정의 실현을 위해 불가피하다.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의 주장 중 하나는, 사형만이 타인의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흉악한 범죄에 대한 올바르고 합당한 형벌이라는 것이다. 이는 범죄의 심각성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응보주의 원칙에 기반한 생각이다. 이러한 응보주의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법감정과도 연결되며, 사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구성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형 폐지론자들은 이러한 응보적 목적과 태도로 국가가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공적인 이름이긴 하지만 결국 “복수”에 불과하며 반성과 교화의 기회를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해자의 사형을 통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고통과 상처가 해결되지 않으며 실질적인 이익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형에 반대하는 피해자 유가족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통해 사형이 피해자를 구제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아닐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모든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유가족들은 자신의 소중한 가족은 사망하여 돌아올 수 없음에도 가해자는 옥중에서 자신의 가족을 만날 수 있고, 생일을 맞이하며 나이들어갈 수 있음에 분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일부 유가족들, 자신의 주장에 적합한 근거가 되는 유가족들의 사례만을 편중되어 살펴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유사한 맥락에서 흉악한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여 재범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사회와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 즉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정과 교화를 믿는 관점에서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 범죄 억제 효과 : 사형은 범죄를 예방한다.


이들의 두 번째 주장은 사형제도의 존재가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즉 사형제도의 존재가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경고로 작용하여 흉악 범죄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직관적으로는 옳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를 검증하고자 했던 많은 실증 연구들은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한다는 근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물론 범죄율에 영향을 미치는 정말 다양한 변수들(사회경제적 요인, 경찰력 등)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여 사형 집행의 범죄 억제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사형의 위하력에 대한 주장은 학계 내에서 정설로 자리잡지 못했다.


다만 일부 소수의 연구에서는 사형 집행 1건 당 몇 명의 다른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보고하는 등 효과를 보였고 사형제 존치론자들은 이러한 소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사형제의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후속연구를 통해 재현(reproduct)되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존치론자들과 폐지론자들은 모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자료만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은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히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논의를 벗어나는 양상으로, 즉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를 선택적으로 적용하여 주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사회비용 효율성 : 사형 집행은 장기간 수감에 드는 비용을 절감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형 존치론자들은 흉악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여 재범을 차단하는 것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한 가지 방법은 이 범죄자들을 영구히 구금하는 것이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형을 선고하여 집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사형 존치론자들은, 장기간의 수감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차라리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이에 비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즉 다소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범죄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보다 이들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비용 상의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 효율성은 해당 국가가 사법 시스템 내에서 인권 보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피고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중시하는 국가일수록, 사법 시스템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 사형 집행 비용이 종신형보다도 더 높아진다고 본다. 예를 들어, 사형 선고의 정확성과 확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국선 변호사 등 국가에서) 더 많은 변호를 선임하고, 끝없는 법적 다툼을 지속하는 경우. 그리고 오판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거의 없애고), 유죄를 확실하게 가리기 위해 필수적인 과학적 기법들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종신형 수감보다도 더 큰,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4]



사형제 폐지론의 3가지 논리


1) 생명권과 인간 존엄성 : 생명권 박탈은 국가가 위임받은 권한 행사일까?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생명권과 존엄성이 모든 인간이 가지는, 가져야 하는 보편적이고 침해될 수 없는 권리라는 점이다. 시민/국민들은 국가에게 권한을 위임하며 사회 질서를 지키는 등의 의무를 부과하였는데, 그 중에는 생명 보호의 의무도 있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이러한 생명 보호 의무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공적이고 제도적이긴 하나) 사형이라는 살인의 주체가 되는 것은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부족해 보인다. 앞의 논리가 맞다면 전쟁이나 경찰의 무기 사용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또한 형벌의 목적이 교정과 교화, 그리고 재활을 통한 사회복귀라고 생각했을 때, 사형이라는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형벌의 본질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형 폐지론자들과 사형 존치론자들은 ‘형벌의 목적’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 존치론자들은 형벌의 목적을 ‘흉악한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여 재범을 원천 차단하고 이를 통해 사회와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폐지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 즉 두 입장은 어떠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볼 것인지에 대한 생각, 즉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입장차를 좁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2) 오판의 가능성: 사형의 비가역성


사형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운영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오판을 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만약 오판하여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더라도 이러한 사형이 집행까지 이어졌다면 나중에 이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지는 경우에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이와 같은 사형의 비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의 하나로 사형제도가 이용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시절 발생한 ‘조봉암 진보당 사건’에서 피고인 조봉암은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죄를 뒤집어 쓴 뒤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고, 재심 청구가 기각된 지 17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후 2010년 진보당 사건에 대한 재심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2011년 대법원에서 원심을 파기, 조봉암의 간첩 혐에 대해 공식적으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50여 년 만에 진실이 규명되고 명예가 회복되긴 하였으나, 사형제도 때문에 조봉암은 이러한 기쁨을 직접 누릴 수 없었다. 즉 아무리 이후 무죄가 밝혀지더라도 사형으로 인해 빼앗긴 생명을 되찾아줄 수는 없으며 이러한 점이 사형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형 존치론자들은 이러한 일이 과거 독재정권 등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재의 사법 시스템에는 이러한 오판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주장과 판단을 통해 운영되는 사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를 간과한 것이다. 1995년부터 2012년까지의 강력범죄 사건 중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으나 2심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이 무려 540건에 달한다는 통계[5]는 사법 시스템의 한계가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는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운영하는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완전성을 방증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 수도 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의 사례도 있고,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청소년도 있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도 있고,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린 3명의 소년도 있다. 이러한 억울한 사건들을 맡아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만 봐도 얼마나 많은 오판 사례들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사형 폐지론자들은 사법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고려하였을 때 사형제도는 이러한 결함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고, 따라서 사형 집행은 국가가 자신의 오판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3) 사형 적용의 불평등성 : 유전무죄, 무전유죄


미국 워싱턴주 대법원에서는 2018년 사형제도에 대해 위헌 판결을 하면서, 사형 제도가 ‘자의적이며 인종차별적 방식’으로 적용되어 왔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동일한 범죄에 대해 백인 피고인에게는 종신형이 선고되었으나 흑인 피고인에게는 사형이 선고된 사례가 있으며, 검찰이 피고인이 백인인 경우보다 흑인인 경우에 사형을 구형한 사례가 4배나 많았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훼손되었을 수 있으며, 사형 선고가 범죄의 객관적 성격이 아닌 피고인의 특성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종이라는 특성에 의해 사형이 불평등하게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와는 상관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신 우리나라에는 지강헌 인질극 사건에서 등장했던 명대사가 있지 않은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처럼 인종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나 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같은 것도 사형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도 사형 적용의 불평등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다시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이 있을까


과거에는 사형의 시효가 30년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사형의 시효는 폐지되었다. 이로 인해 사형이 확정된 수형자는 집행의 공포로부터 영구히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사법부가 사형 제도의 실질적 효력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로 사형 집행을 재개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인권기구들에 의해 인권상황을 검토받고 있고, 특히 2008년 유럽평의회와 체결한 ‘범죄인인도에 관한 유럽협약’이 국회 동의를 거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게 됨에 따라 사형 집행을 재개하게 되면 국가가 승인한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사형 집행 재개가 매우 신중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1]: 법무부(25.01.02.). https://www.immigration.go.kr/bbs/moj/93/590720/artclView.do


[2]: ‘행형법’ 개정 전에는 수용자를 '수형자(기결수)'와 '미결수용자(미결수)'로 구성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형수는 수형자로 분류될 수 없으므로 일단은 미결수용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2008년 행형법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며 수용자의 분류에 '사형확정자'라는 별도의 분류가 생겨, 현재 사형수는 사형확정자로 분류되고 있다.


[3]: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 자체는 사실 구약성경에서 유래하였다. 출애굽기에는 "눈은 눈이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항므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라는 구절이 있으며, 신명기에는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다만 이러한 구절들과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 모두 고대의 동해보복 원칙, 즉 응보주의(죄에 맞는 벌을 내림)의 맥락을 따르고 있어, 구체적인 출처를 따지지 않고 함무라비 법전에서 나온 말이라고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4]: 스콧 터로, 「극단의 형벌


[5]: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수첩 2018.01. https://www.humanrights.go.kr/webzine/webzineListAndDetail?issueNo=7602456&boardNo=760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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