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요새 회사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이상하게 추천되는 콘텐츠들이 '퇴사'와 관련된 것들이 추천된다.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유튜브에서도 퇴직 후의 삶, 퇴사를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50대에 퇴직을 하면 벌어지는 일들 등등, 브런치에서도 퇴사를 결심했다느니 이직을 했는데 후회한다느니 그런 내용의 콘텐츠들을 자주 접한다. 나만 힘든 게 아닌가 보다.
그래서 내가 회사에서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봤다. 나는 20대 후반에 신입으로 입사를 해서 40대 초반인 지금까지 한 회사를 쭉 다녔다.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직원 수가 300명 남짓 중소기업이었는데, 지금은 그룹사로 운영할 정도로 중견기업이 되었다. 회사가 고속성장을 하면서 프로젝트마다 잘되었고, 4차 산업의 혁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잘 나가는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주회사 체제가 이루어지면서 상장도 하고, 주식회사가 되면서 예전의 혁신적인 성장과 제품이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부터 그런 현상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었다. 물론 매출은 계속 성장하고 글로벌 사업까지 확장했다. 회사의 성장과정을 몸소 느끼면서,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는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다. 신입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딱히 role이 명확하지 않았다. 품질업무도 하고 마케팅 업무도 하고, 그냥 가라는 대로 갔고, 하라는 대로 일을 하면서 빼지 않고 경험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출장도 많이 다니고, 현장 고객들과 인터뷰도 하고, 회사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별거 아닌 일들도 많이 했었다. 업체와 계약서를 쓰는 방법, 이벤트를 홍보하고, 경품 추첨과 당첨된 사람들에게 경품을 보내고 세금 처리하는 법, 간판 디자인 검수하고 비용 지원해 주는 법 등등 자잘한 회사 업무를 처리하면서 성장했었다. 그래서 장난인지 진담인지 팀장님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술자리만 가면 서로 데려가려고 했었다.
3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는 내 업을 찾고 본격적인 성장을 했다. 하는 일마다 성장을 했고, 그러다 제품개발이 가장 적성에 맞아서 본격적인 PM업무를 했었다. 서비스, 이벤트, 제품 개선, 업그레이드 등 웬만 프로젝트는 다 진행했었고, 회사 내부의 개발부서와 사업부서의 커뮤니케이션을 도맡아서 진행했었다. 그러다 신사업을 위한 조직개편이 있었고, 얼마 전에 퇴사하셨지만, 당시 사업부장님의 오퍼로 신사업 부서로 이동하였다. 신사업을 하면서 거의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도맡아 처리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팀이 구성되면서 어린 나이에 팀장을 하였다. 하는 것마다 성과가 낫고, 그래서인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었다. 가장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성과를 내면서 개인생활과 회사생활이 거의 일심동체가 되었다. 더욱 잘해보기 위해 전문대학원도 자비로 다니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재미있게 일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책임감으로 지냈다. 팬데믹 이후 산업 자체가 하향되면서 어렵지는 않지만 역성장의 기로에 서니 회사가 정책과 사업방향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며 신사업과 신규프로젝트를 중단 혹은 간소화시키며 기존 안정적인 사업의 집중으로 변화를 주었다. 내가 있던 사업부도 분사를 하고 상장을 시도했지만 결국 진행하지 못하면서 급격하게 슬림화가 되었다. 그러면서 신제품 론치가 취소가 되면서 자연스레 조직도 폭파되었다. 하지만 신규제품을 론치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직책도 내려놓고, 육탄방어를 해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한 회사에 오랫동안 일을 하고 하나의 제품에 올인을 하다 보니 제품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도 경험해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계획과 다르게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30대는 열심히 하면 성과가 되고 인정받았다. 40대가 되니 성과를 내더라도 다른 요인들로 인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30대 때는 앞으로 성장만을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더 발전을 시킬지, 회사와 일심동체가 되어 동반 성장에 대한 생각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 그만두면 이직을 해야 할지, 다른 걸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당장은 괜찮지만 30대에는 10년 후에도 회사에 다닌다는 확신이 있었고, 승진과 연봉인상 등 성과를 계속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만 했었다. 지금은 10년 뒤에는 확실히 회사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의던지 타의던지 20년 이상 이 회사를 다닐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고민을 하다 보니, 관련 콘텐츠들이 추천되는 것 같다. 아직 뭔가 실행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향후 사회생활을 어떻게 계획을 세워서 해야 할지 사례 조사와 공부를 하고 있다.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서 해당 부분에 전문가가 될 것 인지, 매니지먼트를 위해 정치판에 들어서서 직책을 받아야 할 것인지, 경영을 준비해서 개인 사업을 위한 초석을 만들어야 할지 등 다양하게 고민이 된다. 벌써 이런 나이가 된 것 같아 슬프기도 하고, 오히려 50대에 이런 상황이 펼쳐지지 않고 좀 더 일찍 이런 고민을 시작한 것에 감사하기도 하다. 여러모로 올해는 많은 것을 배웠고, 느낀다. 지속적으로 배우고 공부하고, 이를 써먹기 위해 내년엔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 도전해 봐야겠다.
직장에서 쓸모가 있으려면, 일과 성과 말고도 다른 것들도 해야 하는 듯하다. 그게 정치던, 아부를 하던, 그럴듯한 사기를 치던, 점점 해야 할게 많아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