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동호회 총무가 하는 일..
가을 골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봄과 가을이 골프 치기가 참 좋은 계절인데, 가을은 봄보다 더 날씨가 좋다. 미세먼지도 없고, 습하지도 않고, 하늘도 높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참으로 골프 칠 맛이 나는 날씨이다. 그래서 가을에는 단체팀 부킹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 당연히 나도 골프가 치기 좋은 날씨이면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좋은 날씨이기 때문에 경쟁이 장난 아니다. 또한 전문 골프 동호회들은 매달 라운드를 가기 때문에 골프장에 연단체를 신청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눈치 싸움을 하며 인터넷 부킹하거나, 골프장에 정식으로 전화해서 골프장과 협의를 하거나, 딜러를 통해서 부킹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일반 동호회는 아니고, 대학원 내 친목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원 입학식에 골프 관련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골프동호회 총무가 되어서 졸업을 하고 난 이후에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하지만 행사가 1년에 2번 정도만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골프를 매개로 졸업한 형님과 누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동기, 교수님들 얼굴을 보며 서로 안부를 묻고 소통하기 때문에 참으로 좋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 고생해서 이런 매개를 지속 운영하는 건 제법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쉽지는 않다. 우선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희망자 모집을 한다. 우리 동호회는 회원이 180명 정도 활동하고 있고, 모두 같은 대학원 출신으로 행사 한 달 전부터 참여의사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보통 행사를 하면 적어도 20명~ 30명 정도 참여하고, 최대 60명까지 행사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대략 감으로 한 달 전에 골프장에 전화를 해보고 7~8팀 정도 부킹을 시도한다. 운이 좋으면 1~2번 만에 성공을 하지만, 운이 나쁘면 10군데 이상 연락을 해도 부킹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부킹을 하지 못한다면 기존에 해줬던 골프장 리스트에 골프장을 돌려가며 예약 시도를 한다. 일반 동호회보다는 학교 이름을 얘기하고 대학교 동호회라고 하면 골프장에서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적어도 교양이 있을 거라는 기대로 그러는 듯하다. 연단체를 신청하면 매달 2~3팀을 1년 동안 매월 가야 한다. 동호회 규모상 1년에 2번만 하고, 최소 6팀~ 15팀을 부킹 해야 해서 연단체는 엄두도 못 내고 매번 골프장에 전화해서 협상을 한다. 이번은 더 플레이어스 골프장에서 했는데, 협의가 잘되어서 부킹을 했다.
이번 라운드는 24명으로 딱 6팀이 확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24명이 확정이 된 것이지만, 중간에 신청했던 사람이 해외 출장에, 다리를 다치거나, 약속이 겹치거나 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갑자기 또 신청을 하는 사람도 생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일들이 일어나서 3~4명이 변동되었고, 마지막에 2명이 비어서 올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최대한 맞춘다. 사실 위약금을 조금 더 내고 3인 플레이 팀을 만들면 되긴 하지만, 캐디피, 카트피를 나누어서 내야 하므로 부담일 수 있을 것 같아, 최대한 노력해 본다. 정안 되면 3인으로 가지만 이번에는 4의 배수가 딱 맞게 잘 떨어졌다.
라운드를 하고 나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예약해야 한다. 골프장에서 너무 멀어서도 안되고,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고, 공간도 따로 되어 있어야 한다. 정 없으면 골프장에서 해도 되지만 금액이 부담되어서, 보통 골프장 근처 행사에 적합한 식당 리스트를 확보해서 예약한다. 행사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추천을 해주는데, 대략 리스트에 있는 식당을 가면 단체 행사한다고 하면 알아서 세팅해 준다. 무대에 마이크와 앰프까지 세팅해 주는 식당도 여럿 보았다.
그리고 단체 라운드의 하이라이트인 시상 경품을 준비한다. 우리 동호회는 회원비가 없고, 협찬을 통해 운영이 된다. 현금, 홍삼, 화장품, 가방, 양주, 와인, 과일, 골프채, 골프공 등 다양한 협찬품을 받는다. 그러면 라운드가 끝나고 나서 스트로크와 신페리오 1등만 챔피언으로써 명예롭게 시상을 하고, 나머지 상품들은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한 개씩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짜서 운영한다. 모두 행복하게 집에 갈 수 있도록 최대한 고민해서 진행한다. 물론 행사 진행은 짬이 많이 차신 동호회 회장 형님이 하셔서 노련하게 잘 진행해 선물을 잘 챙기고 사진을 잘 찍는다.
교수님 훈화말씀, 협찬자 한 말씀, 시상자 한 말씀.. 하다 보면 모두 한 마디씩 다 한다. 준비하는 건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막상 이벤트가 시작되고,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고 근황을 서로 확인하고 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뿌듯한 일이다. 일 년에 2번이 다 적당한 것 같다. 매달 한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것이다.
또 이렇게 올해 봄과 가을 행사를 모두 마쳐서, 내년에 또다시 해야지. 피곤하고 힘들긴 하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 골프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운동이고, 남녀노소가 모두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건전하게 즐기면 친목도모에는 무엇보다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