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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ul 27. 2019

어느 중고차 딜러의 쿨한 제안

납득이 안 되는 제안을 받았다면 생각해 보자.

오, 그럼 그냥 이 차를 타고 집에 가서 와이프에게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고 와요.


지인 중 한 명이 짧은 거리, 소소한 목적으로 세컨 카를 알아보러 중고차 샵에 갔다가 딜러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차량 등급에서는 보기 힘든 풀 옵션이었고 마일리지도 적어 차 상태가 좋았지만 예상했던 가격보다 조금 높은 터였다. 그래서 지인은 에둘러 거절하는 격으로 '와이프에게 물어봐야 될 것 같다.'라고 했더니 저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우와 그 딜러 배짱이 대단하네요!', '그냥 몰고 LA까지 달리시지 그러셨어요?' 하는 농담이 오가기 마침맞은 일화였다.


이처럼 한 번 들었을 때 선뜻 납득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 합리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개인의 입장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게 그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가?'를 생각해 보는 형식이다. 이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테니까.' 하는 두루뭉술한 답변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 당장 사지 않은 상품의 상당수는 영원히 사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의 욕망은 급히 변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끝없이 다양한 상품들이 나온다.


다시 위의 중고차 딜러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내가 처음 들었을 때 먼저 생각난 것은 두 가지였다. 보증제도와 '돌아갈 배를 불사르는 전략'이다. 


1)

보증제도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비가격적인 방식이다. 우리 제품은 가격이 같거나 조금 더 비쌀지 몰라도 품질이 경쟁사보다 월등하다고! 경쟁사는 고작 1년 보증을 하지만 우린 5년이라고! 그러면 소비자들은 고민하게 된다. 얼마나 잘 만들었기에 5년이나 무상 보증을 장담한다는 것인지 궁금해 지기 때문이다.


2)

전쟁터에서 돌아갈 배를 불사르는 전략은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극한의 전략이다.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다! 즉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도 우리 편 병사에게도 보여준다. 배수의 진과 똑같다. 무서워서 뒤돌아 봐야 물에 빠져 죽는 것이니 앞을 보고 필사적으로 싸우라는 것이니 극단성에서 맥락이 동일하다.


내가 위 두 가지를 떠올린 것은 모두 조금씩 연관이 있다. 바로 와이프에게 보여줘도 된다는 자신감(보증제도와 유사)과 이 차를 지금 타고 가도 된다는 무모함(극단성과 연관. 지인이 차를 타고 간 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딜러는 이런 전략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일까? 좀 더 근시안적이고 손익과 관련해 생각해 보자.


1.

그 차는 비싼 차다. 중고차 시장에 나온 동급 모델은 대부분 기본 옵션인데 비해 풀옵션에 마일리지도 적다. 동급 대비 비싼 차고 팔면 이윤이 더 남는다는 소리다. 동시에 잘 나가지 않을 차란 소리기도 하다. 시장에서 그 차를 찾는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빨리 팔수록 좋고 팔면 이윤이 크게 남는다. 


2.

차를 타고 가도 된다는 것은 배짱이 아니다. 분실에 대한 보험이 들어 있을 것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그게 현금화에 더 나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가 차를 몰고 갔다가 올바로 와도 나쁠 것은 없다. 심리적인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이프가 거절해도 괜히 그 매장에서 몇 대 더 봐야할 것 같고, 와이프가 오케이하면 가격 깎기 미안해 진다.


3.

그는 그 차를 타고 도망갈 리가 없다. 그는 세컨 카를 사러 간 것이고 여긴 미국이다. 차 없이 움직일 수 없다는 소리고 그는 더 좋은 메인 카를 타고 매장에 갔다는 뜻이다. 좋은 차를 두고 세컨 카를 타고 도망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돌아온다. 판매 직원은 이를 알고 있다. 동급의 차를 바꾸러 갔거나 상급으로 업그레이드하러 간 사람에게도 동일한 제안을 했을까? 위의 두 사례로도 충분하긴 하지만 글쎄, 세모 정도로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 듣기엔 배짱 두둑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중고차 시장이나 유사한 곳에 가면 등급마다 팔고 싶은 차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거래에 판매자의 의중이 좀 더 묻어나는 셈이다. 물론 그 차이가 크다면 소비자가 거래를 거절하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판매자의 세일즈 스킬에 영향을 받는 영역인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보자. 나는 100원짜리 차를 사러 갔다. 그러면 내심 90~110원짜리를 두루 보게 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매장에 가면 120원짜리와 70원짜리를 보여 준다. 동급이라면 풀옵션 vs 사고차량 정도로 보면 된다. 고민을 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70원짜리는 30원을 절약하는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만큼 질이 나쁜 차를 산다는 뜻이고 이는 더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면 첫 예상보다 20원을 더 줌으로써 훨씬 '새 차에 가까운' 차를 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우린 지갑에서 20원을 더 꺼낸다. 30원 아끼려다 도로에서 차가 멈춰 서 수리비로 더 나갈지 모른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세상사 모든 일을 이렇게 비딱하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가끔 겪게 되는 황당한 경우나, 내가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경우라면 이런 방식으로 판매자의 입장을 넘겨짚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가 개인적인 이윤을 취하는 게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거래 시 자신의 판단력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 정도로 여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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