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겼다는 키즈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내달렸다. 아이들이 잘 보이는 한편에 친구와 나는 자리를 잡았다. 출산 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는 내 휴가가 끝나기 전에 얼굴 보자는 연락을 했었고, 몇 번의 조율 끝에 우리는 금요일 오후를 택했다. 업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 가능한 일을 하는 친구 덕분에 평일 오후 우리는 키즈카페에서 볼 수 있었다.
일정을 조율하는 동안 우리는 장소보다 만날 날짜를 먼저 정했다. 문득 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 이거 우리 둘이서만 보고 술 한잔 하고 그런 것 아니지?
- 지금 우리 상황에서 그러자고 권하는 쪽이나, 그것에 응하는 쪽이나,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있을까?
만으로 따지자면 나와 내 친구의 아이들은 나이가 모두 같았고 묘하게도 첫째와 둘째 성별은 정 반대였다. 외로운 미국 생활에 단비처럼 대학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이들의 나이까지 비슷하니 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실로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는 몸조리에 힘들 내 와이프를 배려해 준 것이었다. 내 와이프가-더불어 친구의 와이프도-조금은 덜 번잡하게 있을 수 있도록 두 아빠는 각자의 첫째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서 만났다.
대학 때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가정적인 남자'가 될 것 같았던 친구는 결혼과 육아를 겪으면서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몸소 증명하여 주었다. 그러하기에 내달리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내뱉은 혼잣말은 가식이 아니었다.
- 아이들은 참 이쁘단 말이지.
-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순수한 거지. 어떠냐,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
- 아니, 그렇진 않아.
의외의 대답을 듣고 잠시 놀란 틈을 타, 친구가 계속 말을 이었다.
- 일단 저 나이 때는 시간이 엄청 느리게 간대. 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렇다 칠 수 있겠지만.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거든. 그냥 내가 살아온 대로 그만큼 자고, 공부하고, 놀고 그럴 것 같아서 굳이 두 번 반복해야 하나 싶다. 지금의 지식을 그대로 들고 과거로 간다면 모를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과거로 가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후회를 덜 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 몇 가지의 선택지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 행정고시를 준비하지 않고, 사법고시로 옮기든 아예 이과로 가서 의대로 갔다고 한들그게 내 인생에 걸맞은 성공적인 정답이 될 수 있는 한정된 답안지가 아닌 것이다. 되레 진짜 인생을 바꿔 줄 큰 갈림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책 속 한 구절일 수도 있다. 과연 과거의 자신에게 "그때 그 책을 더 주의 깊게 읽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과거의 나를 보며 드는 '후회'는, 지금의 내가 타인을 보며 느끼는 '부러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친구가 한 말이 더 와 닿는다. 어차피 부러움을 느끼는 나란 존재가 변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달리해서 다시 다른 모습으로 지금에 이른다 한들,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은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기에 지금과 달라질 것이 딱히 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