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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Sep 20. 2019

예측 불가 시리즈 (3) : 금융

사실은 이것을 쓰고 싶었다. Hedge.

오랜만의 시리즈였다. 그리고 시리즈를 연이어 써서 곧장 종결한 것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중간에 다른 화제로 새지 않고 (수시로 떠오른 화두 중 몇 개는 저장해 두긴 했지만-) 직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이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쓸지 생각을 정리하던 중 연관된 잡상들이 조금씩 떠올랐고 한 문단 씩 할애하기엔 길어질 것 같아 시리즈로 기획했다. 그렇게 살을 덧붙이게 된 글들이다 보니 시리즈들 간 연관 고리가 썩 크진 않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가장 쓰고 싶었던 이 편에 대한 관련 지식(금융)을 내가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어찌 서술할지 감이 잘 서지 않지만 일단 시작을 해 본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얼마 전에 본 블룸버그 기사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이 모든 염려를 덮었다. 만약 내 글이 우왕좌왕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사는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바로 댓글로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선 기사를 보자.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9-09-10/some-investors-actually-make-money-on-negative-yielding-debt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negative yieding debt' 즉 수익률이 음수인 시장에서 실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해가 되는가? 이자율이 마이너스인데 돈을 벌다니! 이것이 바로 예측이 불가한 금융시장의 묘미 중 하나다. 뻔히 이자율이 음수인 게 보이는데 예측 불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부터 이를 풀어보겠다.




금융 시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를 잘 뒷받침하는 이론이 'Random-walk hypothesis' (임의 보행 가설)이다. 마치 술 취한 사람의 다음 발걸음을 예측하기 어렵듯 금융 시장도 앞날을 예견하기 힘들다는 내용이다. (좀 더 들어가서 통계학적으로 보면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되는 변수'들이 아니라 '현재의 정보'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뜻도 함축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줄인다.)


그러다 보니 재미난 일들도 벌어진다. 아마 대부분은 뉴스 가십으로라도 들어봤을 일들이다. 어차피 예측이 불가능하니 원숭이한테 투자 종목을 고르게 한다든지 (=랜덤), 아니면 아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축적된 과거 데이터의 추세로만 투자를 하는 일(=미래는 과거의 누적!)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전자는 우스개로 치부하더라도 후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측을 시도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러나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위인들은 이런 난처함을 어떻게 타개했을까? "미래를 예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 금융 이론 중에도 논리적 구조가 이와 정확하게 동일한 것이 있다. 바로 헷지(Hedge)다. 헷지는 변동성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미래가 어떻게 변하든 내가 미래에 받게 되는 수익률을 고정해 두는 것이다.


헷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파생상품 중 스왑(Swap)을 알면 좋다. 스왑은 말 그대로 두 가지의 상품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이게 왜 미래의 변동성을 헷지 하는 데 쓰이는지 알아보자.


A는 변동 금리 채권을 샀다. 그런데 곧 금리가 내릴 것 같다. 채권을 보유하는 동안 받는 이자(쿠폰)가 갈수록 줄어들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B는 고정 금리 채권을 샀다. 그런데 금리가 지속 상승할 것 같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고정금리는 생각할수록 아쉽다.


이 둘이 쿠폰을 교환하기로 약정하면 이것이 스왑의 간단한 예가 된다. 중간에 금리가 오르든 내리든 서로의 쿠폰을 무조건 교환하는 것이다. 이 약정을 A 입장에서 보자. 변동 금리 채권이라 수익성이 불안정했는데, 스왑을 통해 고정금리를 받게 되었다. 경기 변동이 어떻든 본인의 수익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블룸버그 기사 내용에 좀 더 가까운 거래를 생각해 보자. 이는 선물(Futures)을 통한 헷지 개념이 필요하다. 선물 역시 파생상품 중 하나로, 미래에 어떤 것을 어떤 가격에 주고받자는 약정을 말한다. 기사 속 내용을 풀어 보면 이렇다. 미국 회사가 투자 목적으로 일본 채권을 샀는데, 만기에 특정한 가격으로 달러를 사는 약정도 함께 한다. 즉 외환 거래에 대한 선물을 가입함으로써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헷지 한 것이다. (=선물환 헷지)


미국 회사가 어떻게 이를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는지 보자. 지금 달러를 팔아서 엔화를 산 다음 그 엔화로 일본 채권을 샀다. 만기가 되면 본인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쓰기 위해 엔화를 다시 달러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만기에 환율이 본인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미래 시점에 특정한 가격으로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수준으로 말이다.


(이게 왜 가능한 걸까? 기사에 따르면 현재 달러를 향한 수요가 높아서 그렇다고 한다. 미국이 선진국 중에서 금리가 괜찮은 편에 속하거니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달러의 가치가 높아 진다. 만약 미국 회사가 미래에 지금 보다 낮은 가격(금리 차이를 커버할 만큼)으로 달러를 되사겠다고 했을 때 달러 가치가 그보다 더 하락할 것이라고 상대방이 예상한다면 둘 사이 거래는 성립하게 된다.)


이 건이 재미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본 기사에서 언급한 일본 채권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지닌다. 이를 저축에 비유를 하자면, 예금을 가입하고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예금을 가입하면서 내 돈을 은행에 주는 셈이다. 이런 채권에 투자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지만 희한하게도 이것으로 돈을 버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유는 환율에 있었다. 환율의 변동분이 채권 보유 중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상쇄할 만큼이 된 것이다.


(최대한 숫자를 안쓰려고 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미국 회사가 1달러를 주고 100엔을 받아서 채권을 샀는데, 그게 만기에 80엔이 되었다.(=마이너스 수익) 그런데 만기 시점에 미국 회사는 1엔 당 0.015불의 환율로 달러를 되사는 약정을 맺었다.(=선물환) 그러자 80엔은 1.2달러가 되었다!)


2.

정말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경제학에 다루는 이자율 평형 이론에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이자율 평형 이론은 '금융 시장이 개방돼 있을 경우 금리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자금이 자유롭게 이동하므로 세계적인 금리 수준은 동일해진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을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으면 '세계적인 돈의 흐름은 단순히 유리한 금리를 좇는 게 아니라, 환율(및 물가)의 변동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해서 유리할 때만 이동한다'는 것으로 변한다.


이는 현실을 좀 더 잘 설명한다. 우리나라 예금 금리가 1%인데, A나라가 3%라고 해도 단순히 환전 후 투자하기에 머뭇거려지는 이유가 '나중에 만기 되고 나서 환율이 불리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더불어 타국이라는 물리적 이동의 어려움, 제도적 불편함 등도 있다.)


3-1.

내가 이것에 흥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교과서에서 보던 이론의 실제 사례를 보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를 공부했든 잘 알겠지만 교과서나 이론이 갖는 단순화, 보편화의 한계 때문에 그 예시를 현실에서 보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인위적인 조건의 설정 없이도 이를 보게 되었으니 기사를 보는 순간 쾌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금융업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은 이런 예를 좀 더 자주 보겠지만, 금융업이 아닌 나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3-2.

다음 이유는 복합적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미래가 불확실해서 미래를 고정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었는데, 그것으로 심지어 돈을 번 것이다. 반면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 상대방의 입장은 다르다. 달러 가치가 선물 계약한 것에 비해 더 내리면 미국 회사와 더불어 함께 이득을 볼 수도 있다. 파생 거래에서 발생하는 '훈훈함'인 셈이다.


(앞선 숫자 예를 이어가 보자. 미국 회사가 달러를 되사는 선물을 1엔 당 0.015달러로 맺었는데, 실제 미래에 0.02달러가 되었다면, 상대방은 미국 회사에 채권 만기금 80엔에 대해 1.6불을 줘야 했지만 1.2달러만 줘도 되므로 이익이 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발생 가능하다. 파생상품이 위험하다고들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채권 만기 시점에 달러 가치가 상승했다고 생각해 보자. 미국 회사는 선물환을 가입해 두었으므로 이익을 보지만 상대방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게 된다. 이런 경우 거래에서 '훈훈함'은 찾기 어렵다.


(살 때 달러당 100엔이었던 환율이 200엔으로 상승하면, 채권 만기 80엔으로 0.4달러만 돌려주면 되는데 선물환 때문에 1.2달러나 줘야 한다.)





나는 왜 이걸 이토록 쓰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All light we can not see(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에서 본 구절이 생각난다. 과학자의 운명은 본인의 관심사와 시대의 관심사가 겹쳐져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내 관심사는 통합교과적 이론의 현실 적용이었고, 실제로 교과서에서나 보던 예를 발견한 것이다. 이 단순한 맥락 외에 내가 키보드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또 있다.


어째서 저런 거래가 맺어지는 것일까? 거래 상대방은 미래 달러 가치가 선물환 조건보다 더 내려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에 결과는 윈윈이 될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결국은 미래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기대로 거래가 성립하게 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상대방의 예측을 두고 감놔라 배놔라 내가 판단할 수 없다. 앞선 편들에서 적었던 것들, 그러니까 자녀와 시간도 내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 다시 비로소, 이들을 시리즈로 엮었던 이유가 생각났다.


 


*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 대해 쓰는 것은 역시 어렵다. 화폐금융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고, 지금도 금융 쪽으로 파견 와 있긴 하지만 실제 트레이딩을 해 본 경험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 시리즈물을 기획하면 은근히 부채의식에 사로잡힌다. 나는 왜 스스로를 위한 덫을 놓는 것일까.  


https://brunch.co.kr/@crispwatch/252

https://brunch.co.kr/@crispwatch/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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