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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Jan 05. 2021

13. 동거인

보호종료아동

한국 나이 스무 살. 만 18세가 되면 김 조카는 법적으로 성인이다. 성인이 되면 ‘보호종료아동’으로 분류되어 시설을 나와야 한다. 정부에서 여러 방식으로 보호종료아동(청년)을 지원한다. 일단 자립정착금으로 500만 원, 자립 수당이 월 30만 원씩 3년,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김 조카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어 매달 55만 원. 그러니까 조카는 대학생으로 있는 3년 동안은 일을 안 해도 월 85만 원의 수입이 생겨 일단 생활이 가능하다.


디딤씨앗통장도 있다. 디딤씨앗통장은 저소득층 아동(보호자나 후원자)이 만 18세가 될 때까지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나 지자체가 1:1 정부 매칭지원금으로 월 5만 원까지 같은 금액을 적립해 주어 성인이 될 때 쓰일 목돈이 마련해주는 정부지원 프로그램이다. 


조카가 성인이 되어 시설을 나오면 임대 보증금이 필요할 것 같아 중학교 졸업 때쯤 녀석의 디딤씨앗통장에 매달 4만 원씩을 넣어주었다. 정부지원금까지 합치면 월 8만 원짜리 적금이 조카에게 생긴 셈이니, 3년 후 조카가 스무 살이 되어 시설을 퇴소할 때는 대략 300만 원가량의 목독이 만들어질 거란 계산이었다. 그 후에 부족한 보증금은 내가 조금 더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퇴소하면 어디서 살지를 물었다. 시설의 아이들끼리 교류하는 캠프에서 친해진 친구와 원룸을 잡아서 같이 살기로 했단다.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어떻게 생활할지 물었다. 고아이고 대학에 진학했고 수입이 없음은 김 조카와 같았다. 하지만 둘이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하고 어떤 식으로 지출할지 등의 계획은 없었다. 친구가 어떤 아이일지 모르고 친한 친구라도 막상 같이 살아보면 치약 짜는 위치 같이 사소한 걸 가지고도 다투게 된다고 설명했다. 둘이 다퉈서 한 명이 나오게 되면 남은 한 명이 혼자서 원룸 임대료를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제빵을 공부하던 조카 K는 빵집에 취직했고, 사회복지 협회가 운영하는 원룸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곳은 월세 없이 보증금 500만 원만 있으면 2년 동안 생활할 수 있었다. 통금이 있고 친구를 데리고 오면 안 되는 등 기숙사처럼 관리되어 불편함은 있겠지만, 독립된 공간이 보장되고 월세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았다. 아직 아이들에겐 관리가 더 필요하다. 김 조카도 이런 현실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시설을 퇴소하면 당장 친구랑 생활하며 놀 기쁨에 들떠 있었다. 녀석이 걱정되는 마음에 예전에 봤던 기사 몇 개가 떠올라서 인터넷을 뒤적였다.



[JTBC]만 18세 퇴소…보육원 나선 아이들 혹독한 '홀로서기' 2019. 12. 4.

“자립교육이라고 경제교육이나 일상생활 기술이라든지 이런 걸 배우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 써먹을 기술은 없는 것 같아요” <최은진/사회복지사(보육원 출신) 인터뷰>

정부 주거지원받는 비율은 32% 뿐, 40.7% 5년 내 기초생활수급자 경험

경제적으로 어렵다 31.1%, 살 집을 찾기 힘들다 24.2%, 외로움 등 심리적 부담 10.1%


[EBS 다큐시선] 보육원 보호종료아동의 “열여덟, 세상 밖으로!” 2019. 9. 19.

보호 종료 6년 차 이요셉(26세)씨는 자립 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목돈이 생기자 쓰고 싶은 곳이 많았고, 퇴소 6개월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보육원에서는 가스 밸브 켜는 법, 계란 프라이하는 법, 라면 만드는 법 아무것도 몰랐어요. 위험하니 가만히 있어라는 말만 듣고... 왜냐하면,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70명 정도 되는 숫자다 보니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어 선생님들이 다 해줬기 때문에 저희는 그런 교육을 못 받고 자란 거죠.” <이요셉 인터뷰 中>



EBS 방송을 통해 인터뷰에서 밝힌 이요셉 군의 말처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수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없다. 김 조카가 뭔가 제대로 배워 왔을 거라는 상상이 들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을 돌아봐도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임대차 계약서를 쓰는 법도, 전입신고를 하는 것도, 가스비·전기세를 내는 것도,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사소한 것 하나도 몰랐다. 그런 걸 몰라도 사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까.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곁에 두며 한두 해 정도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했다. 마침 혼자 24평에 살다 보니 안 쓰는 방이 있었다. 이런 제안을 하니 친구와 이미 약속을 했다며 김 조카는 난색을 표했다. 시설을 나와 곧 자유를 얻는데, 굳이 감시자를 두어 자유를 유예시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원치 않는 걸 강하게 주장할 입장도 아니고 조카가 내 말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상의해 보라고 했다. 며칠 뒤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녀석이 살 만한 환경인지 확인해보고 싶어 했다. 물론 후원자가 선의를 표했는데 검증을 하려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나도 선생님들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라 편하게 보도록 자리를 비켜드렸다. 김 조카의 전언에 따르면 선생님들이 집을 보고는 “우리 집 보다 좋은 거 같다.”며 녀석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 정도가 되니 김 조카의 마음이 돌아서서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 후 다른 아이들의 소식을 간간이 들었다. 김 조카가 함께 살려했던 친구는 소비중독에 빠졌다. 통제해 줄 사람이 없으니 돈을 흥청망청 써서, 결국 후원자들이 모아준 디딤씨앗통장까지 깨고 말았다. 김 조카가 말려도 소용이 없어서 더 이상 그 친구와 연락하지 않는다. 조카 K는 매번 지각하다가 빵집에서 잘렸고, 외로움을 못 이겨 과음을 하고 친구를 숙소로 불러 규칙을 어겼다. 결국 월세 없이 2년 생활을 할 수 있는 방에서 강제 퇴소가 예정되어 있다.


김 조카는 시설을 퇴소한 친구들 중 자기만 디딤씨앗통장을 깨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너도 삼촌이 없었으면..'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 걸 다시 삼켰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김 조카랑 같이 살자고 한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좋은 주거 환경이나 마음이 맞는 친구보다, 이제 갓 스무 살 성인이 된 보호종료아동들에게는 아직 옆에서 감시하고 잡아줄 가족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 


전입신고를 하러 가서 우리 둘의 이름이 같이 찍혀 나온 주민등록등본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조카라는 건 내 마음일 뿐, 공적 장부에 찍힌 현실에서 조카와 나의 관계를 정의하는 표현은 '동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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