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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Jan 07. 2021

14. 내 집이 생겼어요

식판에 밥을 먹지 않고, 친구를 초대할 수 있다는 것.

김 조카의 이사는 척척 진행되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도와주어 짐을 옮겼는데 짐이 정말 적었다. 똑같이 생긴 때 탄 흰색 운동화 두 켤레, 벽장 반 개에 다 들어가는 옷 가지들. 시설에서 생활한 스무 살 청년의 짐은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는 반비례였다. 물론 자유인이 된 스무 살은 그 후 적극적으로 옷부터 샀다. 10개월가량 지난 지금은 때 안 탄 흰색 운동화 두 켤레가 추가되었고, 옷들은 벽장에 구겨 넣어도 자리가 모자라 행거를 설치하여 걸고 있다.


김 조카의 방도 채워 넣었다. 우선 LED 등과 휴대전화 충전시설을 갖춘 침대를 들였다. 공부를 안 할 것 같지만 대학생이니 책상과 의자도 사줬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몰랐는데 책상과 의자가 조립품이라 김 조카와 둘이서 낑낑대며 조립했다. 나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아서 책상 위에서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안 해도 녀석에겐 활용성 좋았다. 조카는 책상에 장시간 붙어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주로 LoL(리그 오브 레전드, 과거 스타크래프트의 영광을 이어받은 현시대 E-sport의 대표 게임, 통상 ‘롤’이라고 부른다)과 드라마 시청으로 보냈다. 


당시 나는 승진 발령으로 통영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주말만 부산으로 돌아왔기에 조카는 사실상 24평 빌라를 자유롭게 혼자 쓰고 있었다. 빌라는 지어진 지가 얼마 안 되어 내부도 꽤 좋았다. 자기 시설 친구들은 원룸이나 고시원 방 같이 좁은 곳에서 불편하게 살고 있는데, 조카는 소파에 누워 내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지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공과금, 반찬값 등 생활비는 내가 지급했다. 녀석은 생활비 걱정 안 하며 자립 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를 합쳐 85만 원을 순수하게 용돈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물론 이런 호사스러운 기초생활수급자의 꼴은 내가 못 봐주니까, 그중 50만 원은 미래를 위해 디딤씨앗통장에 적금 붓듯이 넣으라고 시켰다. 디딤씨앗통장은 시중 금리보다 0.5%의 이자를 더 쳐주는 대신, 보호 종료 이후 만 24세까지 월 50만 원의 범위 내에서 납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조카의 실제 용돈은 35만 원이었다.



친구와 같이 살고 싶다던 김 조카는 어디에도 없었다. 녀석은 이 집에 무척 만족해했다. 통영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조카에게서 페이스북 메신저가 울렸다.


“삼촌, 집에 친구좀 들여도댈까요? ㅎㅎ”

조카야! 너 맞춤법은 삼촌 당황시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O.oa;;


이사를 온 지 나흘 만에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문자였다. 살면서 한 번도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을 터였다. 초등학교 때 머리가 짧은 아이를 통해 시설이라는 공간에 초대받아 본 적 있는 나로서는 녀석의 기쁨이 이해가 됐다. 맞춤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녀석의 문자 오타를 지적하기보다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그 후에도 내가 통영에 있는 평일에는 종종 조카에게서 비슷한 연락이 왔다.


“삼촌, 친구가 놀러온다는데 놀아도댈까요??”

“삼촌, 친구 집에서 재워도 대요??”


조카의 친구 초대가 잦다고 생각할 때쯤, 주말에 쉬러 돌아온 집이 엉망으로 변해있는 걸 확인했다. 조카를 불러 조용히 타일렀다.

“집이 생겨서 좋은 건 알겠는데, 집이란 곳은 가족 구성원의 공동생활 공간이자 휴식공간이란다. 누군가 가볍게 놀러 들어오는 호텔이나 펜션 같은 곳이 아니야.”


집이란 공간의 의미를 이해한 조카는 그 이후 친구를 잘 데려오지 않았다. 어쨌든 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녀석에게 삶의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출생의 비밀을 숨기며 사귄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게야 굳이 밝히지 않지만,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핸디캡을 숨기지 않았다. 이젠 보육원에 살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신의 고아인 걸 알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나는 조카의 이런 자신감에서 신애라, 차인표 부부의 일화를 떠올렸다. 한 복지회에서 신애라 씨가 어떤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가 신애라 씨에게 밥이 먹고 싶다는 말을 했다. 혹시나 복지회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나 싶어 놀란 신애라 씨가 “밥을 안주냐?”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식판에 말고요..”라며 울었다고 한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신애라, 차인표 부부는 두 아이를 입양했다. 두 아이는 이제 식판이 아닌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밥을 먹는다. 



공동 주거 생활이 아닌 내 집에서 잠을 자는 것. 식판이 아니라 공기와 접시에 담긴 밥을 가족들과 둘러앉은 식탁에서 먹는 것. 이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과 안정감을 종종 잊고 살았다. 김 조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긴다. 김 조카는 기뻐서 말한다.



내게도 방이 생겼어요! 내 집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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