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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30. 2018

낙인

유학원 입학 상담


며칠 전 유학원에서 입학 상담을 했다. 호주 현지 대학 입학 관련 서류와 자격 요건, 입학 시기 등을 상담했다. 염두하고 있는 대학은 A,B대학 두 군데다. 세간의 평이나 인지도는 B가 높다. 유학원의 입장에선 내가 A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좋다. A대는 유학원에 커미션을 주지만B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중 하나는 B대의 단점을 나열하는 것이었다. 우선 B대를 고를 경우 맞닥뜨리는 고난을 언급했다. 어려운 수업 내용과 까다로운 채점 기준으로 낙제할 확률이 높다. 다음으로 시각 자료를 사용했다. B대학 홈페이지에서 유학생이 부담해야 할 1년 학비를 보여줬다. 공시된 1년 학비는 4천만원이었다. 공포를 더하기 위해 굳이 곱하기 4를 해서 4년치 학비를 언급했다.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그녀는 A대의 학비를 보여줬다. '훨씬 저렴해요. 여긴 2400만원밖에 안 해요'. 차액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예를 들어가며 절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을 잘 구슬리는 사람이었다.

상담은 순탄히 진행됐다. 역할에 충실했던 상담사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의 학습 능력은 변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그 정도 성적 받은 사람이 대학에 가서 더 높은 성적 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공부도 해본 사람이 잘하죠. 00씨의 공부 능력으로 B대에 진학하면 어려움이 많을 거에요. B는 한국으로 치면 연, 고대에 해당하는 대학이이에요. 한국에서 연고대 갈 실력이 아니었다면, 안 가는 게 맞죠.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는 성적표에 나온 수치만으로 나의 학습 능력과 앞으로의 대학 생활을 속단했다는 점이다. 성적표에 나온 수치로학생의 발전 가능성마저 재단해선 안 된다. 실제로 학생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이런식의 상담은 월권이다. 그녀의 역할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 판단이 아니다.

내 학습 능력이나 지적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펜을 놓지 않았고, 배우는 것을 즐겼다. 내켜서 하는 분야에는 빠른 성취를 보였다.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고, 이해한 내용을 응용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시간 분배를 효율적으로 한다. 대학 입학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어떤 대학이 됐던 잘해낼 것임을 확신한다. 모르면 적극적으로 묻고 집요하게 파고들 자신도 있다. 상담사의 말은 내 확신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은 학교에 간 다른 학생들이 낙담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며 걱정해줬다. 그녀가 어떻게 인간의 학습 수준을 구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십 몇 년 전에 받은 성적표가 내 수준을 나누는 꼬리표가 됐다. 마트 육류 코너에 등급 도장찍힌 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의 단면이 내 능력을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한국 밖에 한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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