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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24. 2018

놓을 수 없던 학생 할인


 일주일에 3회 이상 방문하는 카페가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단골이다. 지난 4년 동안, 블로그 글의 90퍼센트를 이 곳에서 작성했다. 글쓰기의 성지, 포인트 갱신의 현장이다. 직원들에게 이어폰을 끼고 분주하게 자판 두드리는 내 모습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왜 하필 이곳인가? 익숙해서 편하고, 금전적 혜택을 얻기 때문이다. 계산할 때 돈을 덜 낸다. 학생이 음료를 주문할 경우 10% 디스카운트를 받는다. 혜택을 받으려면 학생증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다르다. 모든 직원이 나를 알기 때문에, 절차를 생략한다. 묘한 특권의식이 생긴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2주 전에 나는 Advanced diploma 경영학 수업의 모든 유닛을 끝냈다. 이 말은 졸업을 했다는 뜻이며, 다시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가?라고 물을 때 고민할 여지는 있다. 우선 호주 체류자로서의 신분은 엄연히 학생이기 때문이다. 학생 비자로 체류의 근거를 얻는다. 또한 내년 초에 대학에 입학 예정이라 이 시간을 조금 긴 방학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선 변명이다. 카페가 지목하는 혜택의 대상이 아니다. 카페는 영리 목적을 가진 판매 업체다. 학생 할인은 공부하느라 일할 시간이 부족하고, 그 결과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학교는 노동 시간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주머니 사정도 나쁘지 않다. 더 이상 학생 할인을 받으면 안 된다.


항상 시키는 음료는 중간 크기의 아이스 롱블랙이다. 원래 판매가 4.5불, 학생 할인가 4.05불이다. 45센트를 위해 나는 양심을 팔았다. 35불짜리 게임 재화는 부담 없이 사며, 단돈 45센트를 위해 이런 궁상을 떨고 있는가? 치졸하고 비도덕적이다. 이틀 전, 잠에 들기 전에 다짐했다. 다음 방문에서는 이제 학생이 아님을 천명하기로, 더 이상 45센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기로. 오늘은 주말을 맞아 아침부터 카페에 왔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책을 읽을 계획이다. 커피 한 잔에 8시간 체류하는 안면몰수의 현장이다. 기꺼이 4불 50센트를 내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나는 또 4불 5센트를 냈다. 


카운터에서 주인아주머니와 간단한 잡담을 나눴다. 그녀에게 오늘은 비가 오니 '내가' 뜨거운 커피를 먹는 게 어떨까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다. 재화 구매의 판단 근거는 구매자의 기호여야 한다. 그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뜨거운 커피를 마셔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결정을 넘기면서 그녀가 스스로 나에게 중요한 인물, 어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할 요량이었다. 한편, 거기에서 단골 고객으로서 입지를 다지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녀는 뜨거운 커피가 괜찮을 것 같다 대답했고, 나는 그 조언이 중요하며 영향을 받은 척했다. "그럼 뜨거운 커피로" 주문이 끝나고 결제할 때에 그녀는 대답을 배제한 질문을 건넸다. '학생 맞지?' 대답하기도 전에 학생 할인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 속 할인이 적용된 금액을 보며 흘려 말했다. "예에에.." 카드를 찍는 5초 동안 치열하게 갈등했다. 

지금이라도 그녀를 막고 45센트를 더 내는 거야. 

아니야 얼마 안 하는 돈 굳이 말해야겠어? 

아무것도 아닌 돈 갖고 이러는 게 더 웃기니까 하는 말이야, 당장 학생이 아니라고 말해. 

나A와 나B가 설전을 벌이는 중, 계산이 끝났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거짓과 탐욕의 커피를 마셨다. 하찮은 혜택을 놓지 않으려 고집부리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귀찮게 신경쓸 바에 정정할걸.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티끌 같은 부조리가 쌓여 악의 태산이 되는 게 아닐까. 내 것을, 혹은 내 것이 아니더라도 우연히 갖게 된 어떤 이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거짓을 말하는 부류의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걸 부정하기 위해 '다음에는 꼭...  혼잣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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