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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Feb 08. 2019

나는 30분 뒤에 죽는다 (아 죽기 싫다)





나는 30분 뒤에 죽는다. 어떻게 아냐고? 그냥 안다. 터무니없어 보이겠지만, 내겐 참된 진리다. 1+1=2라는 수학 공식처럼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죽고 싶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30분 (이제 29분이다)이란 30년의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이 주어졌단 것이다. 



지금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중간 사이즈를 시켜서 구석 자리에 앉았다. 밖이 덥고, 오래 걸어서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 앉자마자 벌컥벌컥 마셨다. 투명 컵에 커피가 반이 될 즈음에(커피가 반밖에 안 남았네 대신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되자)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 내 앞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나는 27분이란 여생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우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시체 처리 방법, 고객의 사망으로 스타벅스 매장이 일시 휴업 할 때 배상금, 장례 비용과 절차, 전 여자친구의 참석 여부, 옆에 앉은 정장 차림의 30대 남성의 반응 등등) 



선택지


1. 죽는 장소


스타벅스에서 죽을지 아니면 매장 밖의 어떤 곳에서 죽을지 선택해야 한다. 생명의 마지막이 이뤄지는 배경이 중요한가? 뭔가 상징적으로 있어 보였으면 좋겠다. 30분 뒤에 죽는다는 사실을 안 시점부터 나의 끝은 극적으로 변했다. 탐정물의 희생자가 되어볼까? 돌연사와 어울리는 미스터리한 장소였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동에 쓸 시간이 없다. 여기서 죽기로 한다.(스타벅스가 사망 장소로 나쁜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체인이다. 멋쟁이들의 성지 같은 느낌이랄까? 한국에는 1999년에 진출했는데, 2018년 기준으로 1200개의 매장이 있다. 1호 매장은 시애틀에 있으며, 창립 50 주년이 가까웠다. 또한 그 로고는... 아 맞다 나 곧 죽지.)



2. 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누가 알리는가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사망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사망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지, 남의 입을 빌려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전제가 이상하긴 하다. 내 입으로 말하면 사망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은 산 자의 특권인데, 사망은 죽음으로 성립하는 개념이다.) 내가 하는 게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내 죽음은 내게도 가족에게도 나름대로 중요한 사실이다. 직접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은 정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본인의 입에서 듣는 죽음 통보가 도의적이다. 




3. 어떻게 사망 사실을 알릴 것인가


정보 기술 사회의 장점은 만나지 않고도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을 일일이 찾아가기에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그럼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문자 혹은 전화. 고르기에 앞서 우리 가족을 소개할까 한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우리 아버지(61세)과 일주일에 이틀 동네 마트에서 알바하는 어머니(62세) (어머니가 연상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누나라고 하지 않는다. 00이 엄마라고 부르거나 기분이 나쁘면 '야'라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 장래가 기대되는 성균관대 4년 장학생 동생(21세), 여기에 나를 포함해 4인 가족이다. 동생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랑을 해볼까 한다. 동생의 전공은 신소재공학이다. (신소재공학부는 현재 우리 주위에 각종 기계 및 전자 정보 기기 등에 사용되는 각종 재료의 물성 및 공정, 새로운 소재의 개발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산업사회는 정보산업의 근간이 되는 전자 세라믹 재료,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분야의 정보신소재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및 정보처리 시스템.... 아차 시간이 없다) 취업에 유리한 분야를 전공하고, 학점관리와 대외활동에 신경 쓰는 편이기 때문에 그의 미래는 걱정 없다. 다소 버겁겠지만 혼자 부모님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일이 전화 돌리기엔 시간이 모자라다. 안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 귀한 시간 통화음 듣는데 쓸 수 없다. 단톡방에 올려야겠다.



4. 단톡방엔 뭐라고 쓸 것인가?


'엄마, 아빠, 동생아 나 곧 죽는다.'


이 문장은 어떤가? 정보 전달과 시간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다. 몇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 엄마를 아빠 보다 앞에 썼다는 점이다. 아빠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감정적으로 엄마와 조금 더 가깝다. 엄마 vs 아빠 문제에서 주저 없이 엄마를 고를 수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싫은 것도 아니다. 몸 쓰는 일 하면서 힘들게 가족을 부양한 분이다. 아빠 엄마 순으로 가는 게 경제적 기여도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는 물질 만능 사회의 관습을 체화한 이가 뱉는 표현이다. (죽는 판국에 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렇담 두 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게 좋겠군. 부모님! (아비 부 + 어미 모) 부모란 단어에도 앞뒤가 존재한다. 그냥 '두 분'으로 칭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전후가 없는 단어이므로.(모호한 문장으로, 국어 선생님이 싫어하겠지만) 좋다. 그럼 수정한다. 


'두 분, 동생아 나 곧 죽는다.'


두 번째 걸리는 점은 나 죽는다는 표현이다. 반말이다. 손아래 사람인 동생이 맨 뒤에 위치해 있어서 이렇게 썼다. 존댓말로 바꿔야 하나? 동생아 나 죽습니다는 맞지 않다. 그럼 동생을 부모님 앞으로 보내는 것은? 동생아, 두 분, 저는 죽습니다. 몹시 이상하다. 그냥 문장을 나눠야겠다. 


'두 분, 저는 곧 죽습니다. 동생아 나 죽는다.'


이걸로 결정이다. 많은 궁금증이 뒤따를 텐데, 어느 정도 답답함을 해소해야 한다. 가족의 도리다. 그런데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나의 죽음은 선험적이라 이유가 따를 수가 없다. 이렇게 된 바에야 이유는 생략하고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사랑이란 개념이 모호한데, 나도 딱히 정의 내릴 수가 없다) 설명해야 한다. 아니 구체적인 표현이 좋겠다. (거짓이 있으면 안 되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신적 혜택은 갚을 수 없지만, 경제적 혜택을 갚을 수 있다. 증권사 담당자 통해서 주식 처분하면 은퇴자금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단톡방에 써서 올린다.


'두 분, 저는 곧 죽습니다. 동생아 나 죽는다. 두 분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제 방 책상 서랍에 있는 KB증권 김 팀장한테 전화해서 주식 처분하고 은퇴 자금으로 쓰세요. 동생 시계도 하나 사주세요.'


5. 최후의 만찬


죽음까지 4분 남았다. 자신의 수고를 격려하는 의미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한다. 예수도 거하게 먹고 죽었다.(며칠 뒤에 다시 살아났지만) 일단 카페 밖으로 나갈 순 없다. 시간이 없다. 카페에서 파는 음식 중 하나를 고를까 한다. 머핀과 샌드위치, 소시지 롤 정도가 있다. 조각 케익이 없어서 아쉽다.(죽음 기념일에 적합해서) 마지막은 부스러기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먹는 음식이 어울릴 것 같다. 머핀이 제격이군.



6. 머핀 종류


초코 머핀, 애플 시나몬 머핀, 오렌지 머핀이 있다. 이거 참 고민이다. 초코 머핀도 애플 시나몬 머핀도 오렌지 머핀도 맛있기 때문이다. 나는 컵케익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에 크림이 올라가는데, 크림엔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컵케익은 디저트에 가깝다. 머핀이 식사로 더 적합하다.(맥도날드에서 파는 머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맥모닝이 맛없다는 뜻은 아니다.) 머핀은 뜨거운 커피와 잘 어울린다.(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그럼 머핀 주문할 때 뜨거운 커피를 다시 주문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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