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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09. 2019

20분의 글쓰기 폭격


브런치에서 제 글을 읽고 계신 얼마 안 되는 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브런치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닙니다. 이 점을 염두하시고 이 글을 읽어주세요. 저는 무서운 사람이니 말을 잘 듣는 게 좋을 겁니다. 다른 글쓰기 플랫폼에 매일 20분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많이, 자주 쓰기 위함이죠. 아무 주제나 선정해서 20분 동안 최대한 많이 쓰고자 합니다. 한동안 매일 20분 게시판을 방치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와서 20분 동안 글을 써봤습니다. 4시 47분에 쓰기 시작해 5시 7분에 글을 끝냈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게시판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많이 쓰기-입니다.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고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저와 교감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검색하세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사라지는 꿈. 제가 이 노래 한 곡 반복으로 들으면서 글을 썼으니까요. 이런 무드에서 이런 글이 나왔구나!



자꾸 시작 안 하고 질질 끌어서 죄송합니다. 한 가지 할 말이 남아서요. 아래 쓴 글은 퇴고를 안 한 원본입니다. 덕분에 주어 서술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산개해 있습니다. 눈에 거슬린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물이 반밖에 남은 게 아니고, 반이나 남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죠. 인식은 경험을 앞섭니다. 아시겠어요? 숨은그림 찾기 하듯이 잘못된 문장을 찾아보시라고요. 또 하나의 재미가 됩니다.




4:47




매일 20분 게시판은 많은 글을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간제한은 글쓰기 부담을 줄이고 더 많은 글의 탄생을 응원한다. 20분이란 시간은 내게 여러 혜택을 준다. 1. 낮은 퀄리티에 대한 책임을 전가 2. 본심을 끄집어내기. 더 많이 쓰고 싶지만, 당장 불러올 수 있는 게 이 정도다. 2번 이유는 내게 라캉의 무의식 소환법의 몇 가지와 닮았다. 라캉은 무의식이 현실로 나오는 몇 가지 과정을 설명했다. 꿈, 농담, 말실수. 내게 매일 20분 게시판은 말실수를 불러오는 무의식 소환의 장이다. 죽어야 하는 문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게시판 초기엔 게시판의 이름과 비슷한 행위가 이뤄졌다. '매일' 게시판을 찾고 무언가를 남겼다. 취지에 행동 양식을 맞추다 보면 아카이빙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 여러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말한 꾸준함이 대단한 무언가를 불러온다는 명제를 가슴에 품었다. 별 힘 안 들이고 대단함을 불러오는 가성비 끝내주는 철학적 행위다. 습관이 위대함을 불러온다니... 나의 습관은 위대함에 한 발짝 가까이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는 위대함과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나는 글쓰기의 토대에서 위대한 사람, 즉 위인이 되기엔 모자라다. 습관으로 커버 치기엔 원본 자체의 결함이 크다. 원본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게으름이다. 습관은 게으름을 죽인 게으름 슬레이어의 전리품이다. 2년 정도는 게으름 슬레이어의 칭호를 유지했으나 이젠 아니다. 사진사 칭호와 게으름 슬레이어(글쓰기 테크트리 위의) 칭호는 중복 불가능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빌런이 등장했다. 따분함 대왕이 사진 찍는 필드에 출몰해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래, 내가 돌아왔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오태식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이를 갈고 조직 소굴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꼭 그렇게 게시판 비워둬야 속이 후련했-냐! 사진사 형은 나가 뒤지기 싫으면." 사진사 형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다. 무뎌진 손가락은 날을 갈고 있다. 타닥타닥 자판을 무차별 공격한다. 여백 폭격기로써 빈 공간의 존재를 두고 볼 수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A4 용지를 한 매 분량을 채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 말했다. 나 글방(본명을 언급할 수 없으니 대체한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생각을 같이한다. 나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의 불쾌를 소거하는 것이다. 또한 전체적인 쾌락의 정도를 낮추는 것으로 고상한 쾌락의 추구, 즉 행복의 달성이 가능하다. 글쓰기를 통해 새 2마리를 잡는다. 객관화를 통한 감정 해소(불쾌 제거)와 잔잔하게 오래가는 행위여서 전체적인 쾌락 레벨을 낮출 수 있다.


나는 수다쟁이다. 속으로 말이다. 남을 만나면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나에게 흥미로운 화제가 상대에게 통용되는 게 아니고(1번째 이유), 내가 아는 개념을 상대가 모르고(2), 잘난척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서이고(3),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기(4) 때문이다. 졸라 말하고 싶은데 왜 나 꽈찌쭈는 말할 수 없어! 으흠 걱정하지 마 꽈찌쭈. 네겐 글쓰기가 있어. 쉐도우 복싱이 뭔지 잘 알고 있겠지? 가상의 상대와 싸우는 거야. 어떤 공격을 해도 상관없어. 가상의 상대는 좀처럼 다치지 않거든. 가상의 누군가에게 너의 생각을 아무 걱정 없이 쏟아버리라고. 필기구(노트북) 앞에서 나는 영원의 수다쟁이가 되리. 어떤 이도 나의 수다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



수다란 말은 이야기와 의미가 다르다. 수다는 잉여의 의미가 붙어 있다. 쓸모의 범주 이외에 존재하는 것이 수다다. 그렇다면 나의 독백은 수다가 맞다. 이 독백은 쓸모없이 길고, 방대하고, 개인적이다. 나의 수다를 가능케해주는 것은 매일 20분. 이제 시간이 몇 분 남았지? 5시 5분이다. 18분이 흘렀다. 신에게 남은 시간은 2 분이옵니다, 허나 저는 한 문단을 박살 낼 저력이 있습니다. 그런가 허허허... 정말 믿을만한 장수로고. 그래 한 문단을 조지고 와라. 네 폐하. 제가 술이 식기 전에 문단 박살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부는 벌판을 돌진해 적장의 목을 향해 청룡언월도를 휘두른다. 이걸로 마지막 문단까지 끝내버렸다. 터걱터걱 제가 돌아왔습니다. 술잔을 돌려주시지요. 아직 따뜻하네요.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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