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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07. 2021

재미없는 글




 이틀 전 독서 모임에서 서로의 글쓰기 라이프를 공유했다. 공교롭게 참여한 6명 중 4명(나는 2에 속한다)이 출판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출판사에 최종 퇴고본을 건넸고, 올해 안에 출판 예정이다. 나는 출판 계획은 없지만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다. 요컨대 독서 모임에 참여한 6명 중 한 명을 제외한 전부가 글쓰기와 친밀했다. 글쓰기와 독서는 부부인듯하다.




나는 재미없는 글을 쓴다. 출판이 화제가 되고, 글쓰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취미로 글을 쓴다. 취미에서 충분한 만족을 얻는다. 출판 계획도, 합당한 소양도 없다. 모두의 머릿속에 글쓰기의 결승점은 출판이라는 도식이 있던 것 같다. 몇몇이 출판에서 성공할 것 같은 사람으로 나를 꼽았다. 일전에 에세이 책을 다룰 때 저마다 에세이를 써왔다. 그때 쓴 에세이가 내 글쓰기에 재미란 키워드를 붙였다. 글이 재밌다는데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논리병 환자로서 사실 관계를 정정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재미없는 글을 쓴다.






재미를 측정할 지표는 고정 방문자, 구독자, 조회수, 좋아요 등이다. 나는 블로그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일정 형식을 따르고, 분량 기준을 충족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다. 양측에서 글의 조회수, 좋아요, 구독자 수를 확인할 수 있다. 재미 측정에 핵심 지표는 구독자다. 구독자 수의 의미는 이렇다.




 '이 사람의 글을 지속적으로 읽을 의향이 있다'




그간 브런치에 올린 글은 253편이다. 구독자는 257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한 편 쓸 때 구독자 한 명을 얻어온 셈이다. 가까운 지인 하나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 멜버른에서 떡볶이 파는 누나다. 락다운 기간 중 우울해하지 말라고 2번이나 떡볶이 세트 들고 집까지 찾아온 위인이다. 베푸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글에 따뜻함이 전해지는지 56 편의 글을 쓰는 동안 구독자 5600명을 모았다. 한 편에 100명씩 모은 셈이다. 원피스 세계관이라면 떡볶이 누나 브런치는 흰 수염 해적단이고, 내 브런치는 1 권에 샹크스 해적단에게 혼쭐나고 도망간 산적단 정도가 될 터이다.


*참고로 떡볶이 누나 브런치 : https://brunch.co.kr/@alicemelbourne





글을 읽는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재미와 유익함. 내 글엔 인사이트가 없다. 바꿔말하면 유익하지 않다. 남은 것은 재미뿐이다. 내 글쓰기는 자신과, 독자에게 재미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여기서 구독자가 없다는 말은 글이 재미없다는 뜻이다.






내가 뽑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애다. 자기애의 출처는 자기 기만이거나, 사실이거나, 효율이거나, 아니면 세 개가 일정 비율로 섞인 것일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으로 매번 신포도로 끼니를 때운다. '아니, 1불 50센트 짜리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데 왜 300불짜리 스테이크 먹어?'  그 뒤엔 298.50불 절약해서 주식에 재투자한 내가 승리자란 인식이 따른다. 실질적으로 투자에 돈을 쓴 것도 사실이고, 300불 스테이크 소비자를 낮추며 나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자기 기만, 사실, 효율이 다 들어가 있다. 출발선과 무관하게 결승점은 자기애다. 자기애는 재미있는 글을 쓰지만 남에게 재미를 납득시키지 못한 자신을 위로한다.




'야 네가 쓰는 글은 식자층에게 먹히는 글이야 '




유레카! 지적 소양이 받쳐 줘야 내 글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구나. 고상한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프리미엄 글이다. 요리로 하면 300불짜리 스테이크다.




딜레마는 고상한 재미를 원하는 이들에게 '책'이라는 재미와 유익함이 곁들어진 글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글은 입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 300불짜리 불량식품이다. 옆 가게에서 같은 가격에 더 맛있고, 영양 균형까지 완벽한 요리를 판매한다. 거기 왜 가? 란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른다. 주인장으로서 항변의 시간을 갖는다. 음... 딱히 변호할 말이 없다. 합리적 고객이라면 옆 가게 가야 한다. 주인장의 자기만족 요리를 소비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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