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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31. 2016

게임 중독

 불 꺼진 7인실은 고요했다. 늙고 병들어 기력 없는 환자들이 9시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있다. 가끔씩 오는 간호사와 의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 맞춰 나오는 급식을 먹는다.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이질적인 공간의 한 귀퉁이, 나는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환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밝기를 줄인 핸드폰에선 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간병인 침대에서 이불을 덮은 채 다른 세계에 몰두했다. 바로 옆 침상에는 어머니가 계신다. 낮 시간에 충분한 수면을 취한 것 같은데, 환자들 사이에 동화되어 주무신다. 그녀가 깨지 않게 이어폰을 낀다. 감정 정보의 홍수에 지친 머리에게 휴식을 내린다. 


 하루 종일 거짓말하는 것은 힘들다. 심각하지 않은 척, 다 잘 될 거라 믿고 있는 척. 어머니는 뇌종양 말기 환자로, 최근에 두 번째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은 몸에 큰 부담을 준다. 수술실에서의 12시간이 지나고 환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 수술 전, 어머니는 동네 산책을 하거나 컴퓨터를 하는 등의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셨다. 이제는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 조차 쉽게 가질 못 하신다.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 사일 간, 몇 명의 친척 어른들을 만났다. 하나 같이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인과 담당 의사마저 시한부 판정에 못을 박는다. 속으로 가까워진 죽음을 인정해 가면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꾸 눈치를 보셨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셨지만, 죄책감을 씻기 위해 간병인 역할을 자처했다. 간호사는 새벽에 몇 번 씩이나 찾아와 어머니의 혈압을 재고 링거를 교체했다. 어머니가 화장실을 가려고 움직이면 일어나 부축해드렸다. 아들이 비싼 돈 주고 한국에 와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며 미안해하셨다. 식사 시간만 되면 나가서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말하셨다. 당연히 옆에서 해야 하는 일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는 어머니께 면목이 없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우울해하면 더 신경 쓰실 것 같았다. 쉼 없이 웃고, 농담하고, 밝은 미래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한국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일이 많았다. 보험사, 병원, 은행, 동사무소, 어머니의 대리인 자격으로 방문하고 서류를 정리했다. 몇 달 치를 몰아서 하려니 정신이 없었다.


 친척들과 돈 문제로 반나절 이야기했다. 병원에 돌아와서는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의지를 하는 입장에서 받는 입장이 됐다. 그렇다고 내가 온전히 의지할만한 사람이란 뜻도 아니다. 외국에서 잘 살 거라고 몇 달에 한 번 얼굴 비치는 불효자이다. 곁에 있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나 어릴 적, 어머니는 자식에게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선 열 시간 넘게 일을 했고, 집에선 힘든 내색 없이 집안일을 하셨다. 그 반에 반도 못 하며 힘든 내색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역할 수행 중에 어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면 핸드폰을 꺼냈다. 가까이에 도피처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빨리 끝났다. 어머니께 한 달 뒤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접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외면했던 것들을 한 번에 받아들이니 정신이 피폐해졌다. 머릿속엔 걱정이라는 불청객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를 탈 때도, 호주에 돌아온 지금도 초대받지 않은 그 손님은 집에 가지 않는다. 핸드폰 메신저로 친척 어른에게 한국 상황을 보고 받을 때마다 손님이 미쳐 날뛴다. 나는 또 게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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