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남 양산에서는 뇌경색을 앓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남편 C씨가 체포되기도 했다. C씨의 아내는 2014년 뇌경색으로 신체 한쪽이 마비됐고, 아내의 투병 생활로 C씨는 약 8000만원의 빚을 졌다.
2년 전에는 C씨 본인도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목디스크 증세가 심해지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으로 수술한 C씨는 기존 회사에 재입사하려 했으나 좌절돼 더욱 큰 경제적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2023년 11월 아내가 낙상 사고로 수술받으면서 간병 부담까지 불어났다.
C씨는 복권에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지난 3월 복권 낙첨 사실을 확인한 C씨는 더 이상 돌파구가 없다는 생각에, 아내와 와인 2병을 나눠 마신 뒤 취한 아내를 안방 의료용 침대로 옮겨 눕혀 목 졸라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인터넷 서핑하다 기사를 읽었다. 간병을 감당할 수 없어 가족을 죽이고, 자살기도한 사람 얘기다.
간병으로 생긴 빈곤, 그리고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유독 아프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절실히 공감한다. 이 비극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다. 노력이 부족해서, 생각이 짧아서 등의 이유를 갖다 댈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는, 그러니까 절대 비극이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기사는 나를 과거로 이끈다.
7년 전, 어머니가 1년가량 뇌종양으로 앓다 가셨다.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1년 동안 계단식으로 상태가 나빠졌다. 초기엔 다소 활력이 없을 뿐 일상생활이 가능했고, 그다음엔 간혹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다음엔 몸의 절반을 움직일 수 없게 됐고, 치매 증상이 왔고, 마지막엔 식물인간 상태였다. 2 시간에 한 번 가래를 빼주지 않으면 질식사하는 컨디션이었다. 몸이 침을 삼킬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아질 길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매번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성과 멀어져, 감각의 세계에 침잠해 가는 세상 가장 소중한 사람을 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소중한 이의 건강 악화도 문제지만, 병원비도 못지않은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 공백을 사회 시스템이 메워주면 가능하겠으나, 구멍은 좀처럼 막을 수 없다. 점점 줄어가는 잔고와,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병원의 말은 양쪽에서 사람을 옥죄어 온다. 어머니가 든 암 보험, 실비 보험이 없었으면 진작에 파산이었다. 최초 암 진단비를 받았다. 어머니 병세의 차도가 없어 전세를 뺐다. 어머니의 전재산과 암진단비와 전세금, 실비보험의 병원이 지원이 1년을 버틸 수 있는 생명줄이었다.
생명줄도 기한이 있다. 매달 800만 원의 병원비와 간병인 비용이 청구됐다. 수술이 있으면 비용은 추가됐다. 실비 보험은 간병인 비를 부담하지 않는다. 1년이 됐을 무렵, 계좌에 더 이상 지불할 돈이 남지 않았다. 내가 호서 사업을 정리하고, 학비를 돌려받아 한국으로 보낸다면, 어머니의 병원비를 3개월 정도 추가로 부담할 수 있었다. 대신 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간 벌어둔 모든 돈, 삶의 터전, 비자, 사업, 연인까지. 가족의 병원비를 안 낼 수 없는 노릇이다.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몇 주의 병간호를 마치고, 호주로 잠시 돌아왔다. 며칠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았다. 한국으로 향해 장례를 치렀다.
투병이 길어졌다면, 나도 인터넷 기사에 나오는 딱한 사람 중 하나가 됐을 지도 모른다. 몇천만 원의 빚을 지고, 간병과 막노동을 오가다 세상을 비관했을 지도 모른다. 저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 상황을 알기에 뉴스에 나오는 이들에게 속으로라도 훈수 두지 못 한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라면 안다. 우리가 자력으로 빠져나갈 길이란 없다.
이런 빈곤의 경계에 섰던 기억들이 지금의 가치관을 만들었다. 지금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언제든 비극은 곁에서 기회를 노린다. 인간은 나약하다. 나는 비극을 막을 능력이 없다. 아직 오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