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를 찾은 이유는 몇 가지다. 관광, 은행 업무, 투자자 미팅, 피부 관리, 친구들과의 만남.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조카의 돌잔치 아래에 놓인다. 돌잔치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 기회에 시드니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함께 처리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풀며 조카를 떠올렸다. 최근 멜번에서 만났던 조카의 웃음이 생생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작년 이맘때, 처남 부부의 출산을 돕기 위해 시드니에 왔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빨리 처남댁(처남의 중국인 배우자)의 산통이 시작됐다. 중국에서 급하게 오신 처남댁의 어머니를 공항에서 집으로, 병원으로 모셨다. 처남댁 곁을 지키던 처남을 대신해 병원과 집을 오가며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20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조카가 태어났다. 직장 일로 바쁜 아내는 주말 무렵 합류했다. 병원에서 처음 본 조카는 빨간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그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다. 병원 복도의 기다림이 문득 떠오른다.
돌잔치는 어제 열렸다. 식 전에 와서 도와달란 요청을 받았다. 2시 시작인 행사인데, 12시 10분에 도착했다. 처남 친구들은 9시 30분부터 준비에 나섰다. 가족보다 친구가 낫다는 말이 딱 맞았다. 늦게나마 도우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켓을 벗고 바지춤을 올렸다. 10여 명이 모여 장식을 붙이고 테이블을 세웠다. 농담을 주고받다 보니 2시까지 준비를 마쳤다. 다들 손뼉을 치며 조카 이름을 불렀다. 아이를 위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장소는 급하게 바뀌었다. 원래 아파트 예약제 라운지에서 쾌적하게 할 계획이었으나, 공사 문제로 단지 내 실외 정원으로 옮겨졌다. 아파트 3동이 만나는 2층, 바베큐장과 잔디밭이 있는 공간이다. 덕분에 자연스럽고 따뜻한 분위기의 돌잔치로 거듭났다. 입주민의 여가를 위해 마련된 곳을 축제의 장으로 바꿨다. 대나무 가벽과 병풍을 세우고 풍선과 리본으로 장식했다. 케이터링 업체에서 치즈 플래터, 핑거푸드, 샌드위치, 디저트 등을 제공받았다. 바베큐 공간에 음식을 배치해 누구나 자유롭게 즐기도록 했다. 중앙 테이블에는 방명록, 복조리, 이벤트 상품을 올렸다. 큰 콘테이너에 얼음을 채우고 맥주와 음료를 넣어 쉽게 꺼내도록 준비했다. 준비 중 조카가 잔디밭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이 본인을 위한 것인지 아직 모를 터다.
행사는 중국식으로 진행되었다. 처남댁, 즉 조카의 어머니가 주도했다. 한국계 호주인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는 중국식 돌잔치를 치렀다. 처남댁은 자신의 어머니와 쇼핑 채널을 통해 중국에서 다양한 물품을 주문했다. 이를 통해 중국 돌잔치의 최신 경향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돌잡이 중심 행사와 달리 중국식은 의식이 풍성하다. 조무보가 아이의 손을 씻겨주는 의식, 아버지가 빗으로 머리를 세 번 빗는 의식, 어머니가 징을 치며 아이가 문을 기어 넘어가는 의식, 지장과 족장을 한지에 찍어 사자성어로 액자를 만드는 의식, 조카의 출생 연도 한정판 마오타이를 봉인하는 의식(18살에 개봉), 돌잡이, 아버지의 연설, 어머니의 중국 현악기 연주, 복권 추첨까지. 2시간이 꽉 채워졌다. 중간중간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눴다. 조카가 손님들 사이에서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맥주 캔을 들었다. 아이의 웃음이 공간을 채웠다.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째, 부모의 바람이다. 중국식 돌잡이는 약 20개의 물건을 아이 주변에 놓는다. 각 물건은 행운을 상징한다. 조카는 만두를 쥐었다. 먹을 복을 뜻하지만, 처남댁은 책을 살짝 보여주었다. 이어 열쇠 꾸러미를 흔들며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조카가 열쇠를 쥐자 처남댁이 외쳤다. “우리 아이가 열쇠를 골랐어요!” 열쇠는 부동산을 의미한다. 처남댁의 집안은 부동산으로 부를 이루었다. 그 풍요가 딸에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드러났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조카의 작은 손에 쥐인 만두를 바라보았다. 그 손이 자꾸 눈에 밟힌다.
둘째, 양육의 책임감이다. 돌잔치는 준비 단계부터 만만치 않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 주변의 행사를 보면 빠질 수 없다. 다들 이 정도는 하는데, 우리 아이만 소홀할 순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부모를 짓누른다. 손님들의 비행기표와 숙소 비용을 합치면 천만 원이 넘는다. 그들의 발걸음을 헛되게 할 수 없다. 처남이 테이블을 옮기다 잠시 앉아 물을 마시던 순간이 떠오른다. 손목에 묶인 풍선이 가볍게 흔들렸다.
셋째, 소비의 흔적이다. 행사를 위해 수많은 물건이 사용되었다. 병풍, 가벽, 꽃, 멜라민 그릇, 돗자리. 대부분 일회용이다. 집이 좁아 보관할 공간이 없고, 재사용할 기회도 드물다. 정리와 보관은 번거롭다. 10명이 몇 시간 동안 만든 세트가 2시간 만에 쓰레기통으로 갔다. 쓰레기봉투를 묶으며 잠시 손을 멈췄다. 조카의 밝은 웃음소리가 잔디밭에서 멀리 들려왔다. 이 공간을 꾸미기 위한 물건의 짧은 생애를 머릿속에 그렸다. 온라인 주문, 비닐백과 박스에 담긴다. 유통회사 손에 넘어가 비행기로, 배로, 차로 위치를 바꾼다. 배송지에 도착해 포장이 뜯긴다. 개봉 후 몇 시간 뒤에 쓸모를 다하고, 쓰레기통과 재활용통으로 이동한다. 요즘엔 편리함이 저렴하다. 너무 저렴해서 재활용의 수고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먹고 놀고 웃는다. 그러기 위해 어른의 힘이 필요하다. 나는 도우미로 몇 가지 일을 거든 것에 불과하다. 부모의 노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손님 맞이, 연설, 세트 준비, 선물, 공연. 요즘 부모는 바쁘다. 그 수고를 가까이 보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맥주 세 캔, 케이크 한 조각, 치즈가 듬뿍 발린 크래커를 먹으며 행사를 즐겼다. 중국식 의식을 동영상에 담아 SNS에 올렸다. 그리고 2시간 뒤, 축제가 끝났다. 조카의 만두를 쥐던 손, 밝은 웃음소리, 처남댁이 열쇠를 들고 웃던 얼굴 모두 잔상처럼 남는다.
나의 돌잔치는 달랐다. 집에서 떡과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 몇 명이 모였다. 평소보다 상을 풍성히 차렸지만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돌잔치는 연회장 문화다. 공간, 음식, 케이크, 사회자까지 준비된다. 효율적이지만 개인의 손길은 덜하다. 시드니의 실외 파티는 하나부터 직접 준비해야 했다. 수고스럽지만 부모로서의 충실함을 채웠다. 중국산 저렴한 물건들이 이를 도왔다. 조카를 다시 바라보았다. 내 손가락을 쥐는 아이의 힘이 단단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축하 뒤에 고민이 따라온다. 블로그에 이런 생각을 적고, 현실에서는 조카의 앞날을 빈다. 잔디밭에서 웃던 그 얼굴이 오래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