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건설은 오랜 시간 주가 대비 우수한 실적을 꾸준히 기록해온 기업이다. 하지만 그 잠재력에 비해 시장의 평가는 냉담했다. 원인 중 하나는 높은 자사주 비율이었다. 회사는 정기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왔고, 현재 전체 주식의 약 20%를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다. 이 자사주가 소각되지 않고 장기간 보유되는 구조는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전체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는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서희건설의 경우 단순 계산으로 약 25%의 가치 상승 여지가 발생한다. 100원어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라면, 자사주 소각이 이뤄질 경우 실질 가치는 125원에 해당하게 된다.
물론 자사주 보유가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사주는 주가 하락 시 방어 수단이 될 수 있고, 유동성을 조절하거나 향후 전략적 활용 여지도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로도 자사주는 유용하게 작동한다. 또한 M&A 대응이나 임직원 스톡옵션 제공 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어 단기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기능도 있다. 한편으로 자사주 매입은 주가에 대한 기업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신호로 작용하며, 시장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자사주가 소각되지 않고 장기 보유되는 구조는 단점이 명확하다.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한 채 소각하지 않는 배경에는 경영권 유지라는 현실적인 목적이 있다. 자사주가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외부로부터의 지배권 위협을 방지할 수 있다. 특히 지분율이 애매한 상황에서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소액주주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서희건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성티앤에스와 장녀의 회사인 애플이엔씨 등 특수관계인의 법인 명의로 4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자사주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80%에 가까운 내부 지분율이 확보된다. 그 결과 기업은 의사결정에서 외부 주주의 목소리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이는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구조는 서희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활용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주주의 이익보다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에 방점이 찍힌다. 예컨대, 자사주를 통해 일정 시점에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바꾸거나 우호 지분으로 흡수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외부 주주에게는 불리한 조건을 낳고, 자산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실제 피해 사례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서희건설은 지난 3년간 매년 약 20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탄탄한 실적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1300원대에 장기간 정체되어 있었다. PER(주가수익비율)은 한때 2를 기록했으며, 이는 시장 평균의 1/5 수준이다. 한 주당 500원의 이익을 내는 기업이 1000원에도 거래되지 않는 현실은, 기업의 실적과 시장의 평가 사이에 구조적인 괴리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저평가는 단순한 시장 외면이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시장 제도의 결함이 누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이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실제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 일환으로 자사주 소각을 법제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사주 소각은 단순한 회계 처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주주가치 제고의 직접적 수단이며, 투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더 나아가 순환출자 구조 해소, 경영 투명성 제고, 그리고 공정한 지배구조 확립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법제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정치적 의지가 흔들리거나,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법안이 지연될 경우, 시장은 다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구조적 정체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는 바로 행동주의 펀드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기 전 행동주의 펀드가 선제적으로 개입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주가는 급등했으며 대중의 이목도 집중됐다.
서희건설과 같은 저평가 우량 기업에도 이와 같은 외부의 주주 압력이 필요하다. 나는 서희건설에 관해 브런치에 글을 몇 차례 올릴 정도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품고 있다. 만약 더 큰 자본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직접 회사를 인수해 오너 일가의 독점적 지배를 교체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투자자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행동주의 펀드다. 이들은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 명확한 주주 친화 정책을 요구하며,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한국 시장에는, 이런 외부 감시자이자 개입자로서의 행동주의 펀드가 더 많이 필요하다. 특히 대중의 관심이 서희건설처럼 구조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으로 향하게 하려면, 이들의 선제적 개입이 중요하다.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민간의 감시와 개입이 시장의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서희건설의 사례는 한국 주식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주의 권리보다 경영권 방어가 우선시되는 시장에서,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장기투자를 감행한 일반 투자자에게 돌아온다. 진정한 자본시장의 선진화는 제도의 정비를 통해 가능하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코스톨라니는 주식을 "주인을 따라가는 개"에 비유하였다. 개는 잠시 앞서거나 뒤처질 수 있으나, 결국 주인의 발걸음을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의 시장 왜곡이 있더라도, 기업의 내재가치가 본래의 자리를 찾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날이 스스로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서희건설의 사례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묻는 거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기형적인 시장을 외면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침묵하는 주주를 넘어,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