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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04. 2017

2017년 10월 3일 오후 4시 4분에 저장한 글입니


 남자는 카페에 들어왔다. 카페엔 사람이 많았다.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맨 뒤로 가서 줄을 이었다. 한 발자국씩 앞으로 가 메뉴판을 보기 좋은 자리까지 왔다. 이탈리아 베니스 시가지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로, 모든 메뉴가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었다. 남자는 이탈리아 말을 할 줄 몰랐다. 간단한 인사말 마저도 배우지 않았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를 응시하며 캐셔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엔 흰 머리가 인상적인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있었다. 회색 울 재킷을 입었는데, 등판 라펠 위로 플란넬 소재의 흰색 셔츠 옷깃이 보였다. 베이지색 치노 바지는 잘 다려져 다림선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갈색 가죽 구두로 마무리도 깔끔하다. 남자는 이탈리아엔 멋쟁이들이 많다는 말이 떠올랐다. 노인의 차례가 됐다.


 "Piuttosto grazie a Lei per avermi ivitato? (에스프레소에 얼음 한 덩어리 넣어주겠소?)"

"Grazie per essere venuta? (알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으신가요?)"

"Grazie di nuovo (괜찮소)"


 노인은 느긋하게 주문을 했다. 남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주문 받는 20대 초반의 흑인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 주문대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라면,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남자의 생각은 맞았다. 노인은 돈을 건네고 가볍게 오른 손을 들어올려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음료 배급대로 향했다. 남자는 자신의 차례가 왔기 때문에 캐셔 앞에 섰다. 


"Ha fatto un buon lavoro? (주문하시겠어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이탈리아 말을 할 수가 없으니 한국 말로 해주시겠어요?"


낯선 말이 들려오자 20대 흑인 여성은 당황했다. 남자는 의연했다. 캐셔는 남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품었다. 확인을 위해 다시 말을 걸었다.


"to di pot, Ha fatto un buon lavoro? (못 들어 죄송합니다. 주문하시겠어요?)"

"방금 말했다시피 저는 여기 말을 못 하니 한국말을 해주세요."

"Sono? contento di poterLe essere utile... (네? 죄송하지만 제가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료를 기다리고 있던 노인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눈치채고 고개를 두 사람에게 돌렸다. 그들의 말을 듣는 대부분의 손님이 시선을 줬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탈리안 남녀 커플도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대화를 멈추고 앞에서 주문하고 있는 남성에 집중했다. 남자는 열 명 넘는 손님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마 그쪽이 한국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군요. 제가 음료 이름을 말하면 주문은 받을 수 있겠죠?"

"ntenta! di poterLe essere utile (죄송합니다! 고객님 무슨 말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I do speak English, Do you want to order?"

"저는 노 잉글리시, 영어 못 합니다. 내가 마시고 싶은 건 아메리카노, 그러니까 블랙 커피."

"Black coffee? you mean, Longblack?"

"블랙 커피. 설탕 없이 크림 없이."

"Longblack with cream? Is this what you want to order, customer?"

 "블랙 커피, 노 설탕, 크림. 주세요"

"You want normal coffee, without cream, right?"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커피. 커피를 주세요."

"Okay then, I will order Longblack without cream. Thanks"


캐셔는 귀찮고 부담스런 상황을 넘기기 위해 그의 의도라 판단한 커피를 주문했다. 남자는 포스 머신에 주문이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그 밑으로 3.5 유로가 찍했다.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여러 언어로 쓰인 지폐가 몇 장씩 꽂혀 있었다. 위안, 엔, 미국 달러, 환, 호주 달러, 파운드, 유로화 등. 오래 걸리지 않아 남자는 10 유로로 보이는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아라비아 숫자는 한국도 사용하기 때문에 읽기 불편이 없었다. 귀찮은 상황 앞에서도 태연한 남자를 모든 고객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폐를 캐셔에게 주고 목례를 하고 커피 배급대로 향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는 서양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


"There is a change, you should take this"

"네 가지세요. 유 팁. 팁."

"Tip? Okay. Thanks"



 메뉴판을 응시할 뿐, 남자는 다른 어느 곳을 쳐다보지 않았다. 남자는 평화로웠고, 조용했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고, 그가 커피를 들고 있는 걸로 볼 때 자신의 커피임을 알았다. 남자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받았다. 뚜껑을 열고 향을 맡았다. 자신이 주문한 블랙커피가 맞았다. 외국말을 쓸 필요가 없다. 뚜껑을 덮고 흐뭇하게 한모금 마셨다. 동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파는 아메리카노와 달리 이탈리아에서 파는 커피는 살짝 시큼한 맛이 났다. 이런 평범과 다른 맛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엑소의 콜미베이비였다. 자신이 아는 콜미베이비 파트만 반복해서 흥얼거렸다. 흥흥흥~흥. 좀 전까지 동생이 거실에서 듣던 노래였다. 남자는 왔던 길을 돌아서 카페 출구로 나갔다. 그는 사라졌다. 



 "いらっしゃいませ。セブンイレブンです。(어서오세요. 세븐일레븐입니다.)"


 신오사카역 3번 출구 옆 세븐 일레븐으로 일회용 커피 컵을 든 남자가 들어왔다. 엑소의 콜미베이비를 흥얼거리며 매장을 천천히 걸었다. 자신이 읽지 못 하는 일본말로 쓰여진 제품들로 매장은 가득했다. 한국 세븐일레븐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제품도 많았다. 계산대 쪽엔 오뎅과 프라이드 치킨 등의 핫푸드가 있었다. 남자는 치킨을 좋아하지만, 커피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디저트 코너로 갔다. 디저트 코너엔 다양한 패키지에 담긴 케익과 마카롱이 진열되어 있었다. 치즈 케익으로 보이는 제품을 몇 초간 쳐다보다가 그 밑에 있는 생크림 롤케익을 보게 됐다. 구름같이 새 하얀 크림이 한 가득 들어있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일본에 가면 꼭 먹어야 할 제품 탑10 중 하나와 비슷했다. 글을 읽을 수 없어서 같은 제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외관상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 시고 텁텁한 이탈리아 커피와 크림의 단맛이  잘 어울릴 것 같아 제품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はい。こちらでお会計よろしいですか?”(여기서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이거 주세요. 한국말 말 못 알아 들으시죠? 괜찮아요."

"韓国の方ですか?ある程度わかります。안니온하세요"

"오. 안녕하세요. 이거 맛있어요?"

"마시소? 美味しい。아 마시소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소녀는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 들었다. 남자는 재밌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한국어로 대화를 몇 마디 나눴다. 캐셔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품을 바코드로 찍고, 금액을 말했다. 제품 패키지에 150엔이라고 적혀 있었기에 남자는 이미 금액을 알고 있었다. 지갑을 열고 다시 일본 돈을 찾았다. 남자는 지폐 넣는 공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동전을 들고다니지 않았다. 주머니에 부피 큰 물건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감정 표현이 많지 않지만 호불호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지갑 안을 손가락으로 뒤적거리다 천엔짜리 지폐를 꺼냈다. 아무리 돈이 많은 그였지만, 850엔을 팁으로 주기엔 죄책감이 들었다. 


"몇 개 더 살게요. 잠깐 기다려줘요."


 그는 크림빵을 5개 더 들고 왔다. 아르바이트 소녀는 나머지 5개의 바코드를 찍고 롤케익 6 봉지를 봉투에 담았다. 화면에 900이라는 숫자가 뜨고, 소녀는 900엔임을 말했다. 남자는 주머니에 빼놓은 천 엔짜리 지폐를 꺼내 줬다. 그리고 소녀가 돈을 거슬러주기 전에 팁,팁! 이라고 말하며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왔다.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어쩔줄 몰라하는 아르바이트 소녀가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신기루처럼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에-에---'라며 일본인 특유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상황 파악에 애썼다. 


 방으로 돌아온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몇 번 움직였다. 모니터의 화면 보호기가 꺼지고 게임 화면이 액정에 표시됐다. 요즘 것이라고 하기에 빈약한 그래픽이었다. 남자는 봉투에서 롤케익 하나를 꺼내 커피와 함께 먹으며 창세기전 2를 이어 플레이 했다. 부드러운 롤케익의 크림은 촉촉한 둘레의 빵과 훌륭한 균형을 이뤘다. 남자는 커피의 신맛과 롤케익의 단맛의 대조를 즐겼다. 게임을 즐기며 롤 케익을 두 봉지 더 먹은 남자는 모니터에 집중하며 게임 세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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