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씬짜오, 씬짜오>(최은영) 리뷰/독후감

최은영 작가의 단편들 중 단 하나만을 고른다면.

by 우언타이

※ 스포일러 있음.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쇼코의 미소> 중 내가 으뜸으로 여기는 작품은, 바로 두 번째 이야기인 <씬짜오, 씬짜오>이다.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서늘한 감동을 주는 경이로운 단편. <쇼코의 미소>가 21세기 최고의 국문학 데뷔작 중 하나라면, <씬짜오, 씬짜오>는 21세기 최고의 국문학 단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독일이다. 주인공은 한국인 소녀이며, 아빠의 직장 동료인 베트남인의 초대를 받은 후 교류가 잦아진 양국의 두 가정은 꽤나 친밀해진다. 베트남 가정의 아들 투이가 주인공과 같은 반 친구 사이인 점 또한, 이들이 가까워지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국의 땅에서 조용히 쓸쓸해하던 주인공과 그녀의 엄마는, 각각 투이와 투이의 엄마에게 위로받는다. 투이는 쾌활한 꼬마이고, 투이의 엄마는 다정한 성인이다. 소녀는 소년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둔 이야기를 털어놓고, 여인은 자신의 친구가 선사하는 칭찬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의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과거에 발생했던 한국과 베트남 간 비극을 몰랐던 주인공은 모두가 함께 있던 자리에서 말실수를 내뱉고, 이에 따라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두 가족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된다. 순수한 어린이의 무지(無知)가, 성숙한 어른의 배려를 깨뜨리는 순간의 파열음이란, 그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시간을 이전으로 돌리기 위한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결국 화해는 성취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의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소녀는 투이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건네고 온다. 소중한 만남은 어렵고, 허무한 이별은 쉬운 법.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훗날, 엄마의 죽음을 겪은 젊은 나이의 주인공은 오랜만에 독일을 방문해, 그날 이후 줄곧 회상하던 그때의 그 따스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투이의 엄마와 마주 본 채, 그 옛날처럼 그 정겨운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씬짜오, 씬짜오.




이 단편의 놀라운 점들 중 하나는, 그동안 국문학에서 몇 번 다루어지지 않았을 불편한 소재를 무척이나 정교한 솜씨로 훌륭하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누구를 섣불리 탓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제시하여 독자를 진중한 고민에 잠기도록 이끄는 작가의 능력은, 정말이지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지난 인연을 떠올릴 때의 고통과 여운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상실의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 존재하기에, 문장을 적은 이와 아픔을 읽은 자는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또렷이 공명한다.


필자가 두 글에 나누어 설명한 <쇼코의 미소>와 <씬짜오, 씬짜오> 외의 다섯 단편들 역시 독서하시기를 추천한다. 여러분은 그 경험으로부터, 최은영 작가가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세밀하게 구현해 내는 탁월한 예술가인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25. 04. 0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 <쇼코의 미소>(최은영) 리뷰/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