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다정한 마음이 지쳐있는 어른들을 언제까지나 구원하리라는 것.
※ 스포일러 있음.
백수린 작가의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를 독서한 후에, 오랜만에 다채롭고도 포근한 인상을 주는 유려한 작품과 마주했다는 확신을 받았다. 설렘을 선물하던 이성과의 우연한 재회, 허무히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새롭게 사귀게 된 친구들과의 소중한 우정,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던 이들의 고단한 타향살이, 스스로 눈부신 빛을 내는 여인들의 다양한 인생,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소원을 이뤄주기 위한 집념의 추리가 한데 절묘히 어우러진 이 놀라운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몰입감 있는 독서를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이토록 따스한 서사를 추동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는 바로, 어제를 추억하도록 이끌고, 오늘을 버티게끔 하며, 내일을 꿈꾸게 만드는, 그리움 가득한 지나간 사랑의 흔적일 것이다.
<눈부신 안부>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해미는, 타인에게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죄책감을 내내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불의의 사고로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간 자신의 모범생 언니와, 결국 거짓 편지로 속일 수밖에 없던 한수의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남몰래 괴로워했을 소녀 시절의 해미를 떠올리면, 어느새 마음이 저려온다. 추측건대, 그녀가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주목하고 기록하려 한 점도, 사회 속에 묻힌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기자가 된 것도, 깊숙이 자리한 오랜 아픔과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는 절박한 시도가 아니었을지, 그저 조심스레 짐작할 뿐이다. 바로 그렇기에, 직업 윤리를 끝내 저버릴 수밖에 없는 부박한 환경에서 끝내 튕겨 나온 그녀의 가련한 처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탄식과 한숨이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런 면에서 참 다행으로 다가오는 점은, 우직하고도 자상한 우재의 등장 그리고 그와 해미의 동행일 것이다.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자신의 엄마에게조차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고백하지 못한 채 내밀히 앓아왔을 그녀의 환부를, 환자를 치료로 이끄는 것이 직무인 약사 우재는 몹시나 섬세하고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이로 미루어보아 우재는, 그동안 고요히 외로워했을 해미의 앞날이 이제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을 것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백수린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인물임이 틀림없다고 내게 여겨졌다. 서로를 존중하고 애정하는 두 남녀가 함께할 이 소설 이후의 시간을 상상한다면, 독자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르리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물론 한수의 엄마인 선자 이모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존재인 K.H.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 또한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기에, <눈부신 안부>는 이를 보는 이들에게 정서적 울림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서사적 재미를 선사한다. 순수한 아이들의 선량한 의도로 시작되었으며 한동안 잊혀 있던 기억의 발굴로 완성된 수십 년 간의 첫사랑 찾기 혹은 기적적 만남은, K.H.가 과연 어떠한 인물일까에 대한 읽는 이들의 궁금증을 서서히 증폭시킨다. 과거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던 그 불가능한 도전이 현재의 해미가 보여주는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공에 이르는 도중 하나씩 밝혀지게 되는 K.H의 실제 이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두 연인 사이의 비밀, 그리고 왜 서로를 몹시도 애정했던 그 둘이 끝내 함께일 수 없었는가에 관한 진실은, 독자로 하여금 시대의 한계를 제대로 상기시키기에 참으로 서늘하고도 서글픈 것으로 내게 다가왔다.
고향을 떠나 온 여러 여성이 머나먼 독일의 땅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고 또 향유하는 모습을 조명한 점 역시,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젊음을 희생했으며 결국 타지에서 의사가 된 해미의 이모는 물론이고, 친구 레나의 엄마이자 자유분방하면서도 긍정적인 성격의 멋쟁이 마리아 이모,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반드시 관철하려 고군분투하는 철인 말자 이모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그 지난한 시기를 살아낸 여인들이 품었을 낭만 그리고 꿈에 대하여 넓고도 깊게 상상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파독 간호사 하나하나의 개인적 일상과 사연을 부각하는 점 또한, 문학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백수린 작가가 망각하지 않았음을 독자에게 확인시키는 하나의 또렷한 증거일 것이다.
다만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후 이모의 가정에서 성장했을 소년 한수의 후일담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점은, 적어도 나에게는 다소 아쉬운 마무리로 느껴졌음을 밝힌다. 조국으로 돌아간 소녀의 회신을 저 멀리에서 애타게 기다렸을 한수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부모 없는 현실 속에서 그 빈자리를 강렬히 실감했을 소년의 사무친 고독이 얼마나 무거웠을지에 대하여 글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 한수가 맡고 있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독서 가운데 저절로 인지하게 되어, 마음속에서 서운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임을 그저 추측할 뿐이다. 만약 이 서사의 결말에서 해미가 탑승한 비행기의 종착지가 독일을 향한 것이었다면, 그녀의 한 손에 나이 든 근호의 늦은 고백이 적힌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면, 아마도 <눈부신 안부>에 있어 더 좋은 끝맺음일 수 있었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주제넘게도 이 글에 용기 내어 적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탁월하면서도 찬란한 이야기라는 본래의 의견에는 조금의 흔들림이 없음을 말해둔다. 끈질긴 병마와 맞서 싸우던 선자 이모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자 편지가 바로, 내가 앞서 적은 문장의 선명한 증거이다. 그녀가 죽음을 앞두기 전 아들에게 건네받은 종이에 기록된 성별의 뒤바뀜이라는 필연적인 실수를 논하기에 앞서, 자신의 연인이었던 근호의 고유적 문체를 또렷이 기억했을 선자 이모가, 아직 어렸던 해미가 애써 기술했을 거짓 문장들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으리라고 나는 추론한다. 허나 그 가짜 편지로부터 전해지는 자신을 향한 애정을 느끼며 그녀가 진짜 위로를 받은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인 것을 확신한다. 이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아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응시하며 선자 이모가 느꼈을 감동과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을 테니까. 아이들의 다정한 마음이 지쳐있는 어른들을 언제까지나 구원하리라는 그녀의 그 눈물 나고도 애틋한 선언이, 우리 안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던 희망과 신뢰가 다시금 선명해질 수 있도록 이끌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때로는, 각박하고도 험난한 삶 가운데 문학이라는 영역이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를 목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오직 창작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기적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에, 결코 인간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으리라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눈부신 안부>를 포함한, 상처받은 우리를 끝내 위로해 주는 수많은 소설이 아직 세상에 가득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언제가 이 독후감을 읽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밝혀둠으로 이 글을 마친다.
2025. 0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