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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와하나 Aug 09. 2022

[ 마! 니 뭐하다 왓노? ]

" 마, 니 뭐하다 왔는데? "


신병훈련을 끝내고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뒤 저녁. 하늘 같은 최고참이 내게 물었다.


" 예, 커피 하다 왔습니다. "


" 그래, 가서 시원하게 커피 좀 타온나 "


그렇게 그 선임이 전역할 때까지 커피를 타다 받쳤다. 믹스커피 두 봉. 물 적게 진하게. 아이스로. 잘 지내시죠? 이 xx 병장님? 덕분에 믹스 커피 타는 기술이 좀 늘었습니다. 가끔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마실 때면 생각나곤 합니다. 언젠가 한번 꼭 뵙고 싶어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밤마다 그렇게 커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마저도 커피를 만드는 꿈을 꿀 지경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커피가 미치도록 먹고 싶은데 군부대 안에서는 에스프레소 기계로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가 없었다. 대처방안으로 믹스 커피를 몇 박스씩 재어 놓고 먹었지만 진-한 아메리카노를 대처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께 전화드려 틈틈이 커피에 관한 책을 택배로 받아서 보았다. 어느 한 날은 커피 책을 하도 보고 있으니 선임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다가오더니 기어이 한 소리 했다.


"마!, 니 또 그거 보나. 가서 양파나 썰어라." (취사병이었다)


그렇게 혼나면서라도 커피를 하고 싶은 갈증을 채워 나갔다. 군대 다녀온 이들이라면 공감할 텐데, 군에서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남들은 지금도 나보다 앞서가고 있을 텐데, 나는 왜 이곳에서 양파나 썰고 있는가 하며 자괴감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입대 한지 100일 차. 신병 위로 휴가로 드디어 밖에 나가게 되었다. 내가 커피를 사겠다며 선임병의 손을 이끌고 서울역 인근에서 먹은 아메리카노는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빨대로 쭉 - 들이키자마자 핏줄을 타고 카페인이 도는 느낌이란... 아마 가장 맛있었던 커피를 물어본다면 맛을 떠나 그때의 커피가 가장 맛있었다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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