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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Sep 26. 2024

그 옷 어디서 샀어요?

엘지트윈스가 숨겨진 승자인 이야기

어둡고 춥고 축축하다. 드디어 독일의 가을이 시작되나 보다. 독일에서 5번째 가을을 맞는 우리 아이는 아직도 아침마다 반팔 티셔츠를 습관처럼 꺼내 입는다. 도시락을 싸느라 여념 없는 나는 아이에게 "밖에 추워! 긴팔 입어야지!"라고 소리친다.


아이의 옷장에 있는 옷들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이를 등원시킬 때 독일 유치원 선생님들이 물었다. 


"그 옷 어디서 샀어요?"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맨투맨티가 맘에 들었나 보다. 재질이랑 디자인이 맘에 들어 두벌을 샀던, 저렴한 아동복이다.


"그 거 말이에요. 하나는 주홍색, 하나는 초록색이요. 어디서 산 거예요?"

"하하하, 한국이요."

"아, 우리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 옷 너무 맘에 들어요. 옷 사러 한국 가야 될 거 같아요."

"오세요. 한국 옷 이쁜 거 많아요."


사진에 나온 맨투맨 색깔이 원래 채도가 아니라 많이 높여 봤습니다. 칭찬받은 옷은 이 사진 색에 가까워요.


저번에는 아이의 모자를 어디에서 샀냐더니 이번에는 맨투맨티다. 둘 다 남자 선생님들인데, 울 아들 패션에 참 관심들이 많다. 그럴 만도 한 게 한국 아동복의 디자인은 독일하고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원색인데 촌스럽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대담한 디자인이 많다. 독일 엄마들도 비싼 옷을 입히는 사람이 있지만, 아들 친구들을 보니, 상하의 같은 건 H&M, C&A 같은 곳에서 그냥 저렴한 거 사 입히는 거 같다. 독일 아동복은 핏이라거나 디자인이 확실히 한국에 있는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과는 다르다. 한국 특유의 아기자기함이라던지 디자이너가 밤새 고민해서 찾은 거 같은 색깔 배합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 LA에 사는 친구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한 이야기가 있다. 그 동네는 아이를 맡기면 선생님들이 상표를 확인하러 옷을 뒤집어 본다고 말이다. 경악을 하는 나에게 친구는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아동복에 돈을 많이 쓴다고 했다. 


한국도 명품 아동복 어쩌고 기사가 나와서, 한국 유치원에 보낼 때 뭘 입혀야 하나 고민을 잠깐 했는데, 글쎄 유치원에서는 교복을 나누어 주었다. 행사가 있거나 야외활동을 할 때 입는다고 했다. 교복이 아니면 평생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할 합성섬유 재질로 만든 분홍색 여름 티셔츠와 갈색 바지를 우리 독일 꼬맹이가 입고 등원을 했다. 아들은 분홍색 교복 상의를 아주 좋아해서 행사가 없어도 자주 유치원에 입고 갔다. 한국 유치원 아이들의 옷들은 옆에서 보니 정말 알록달록하고 예뻤다. 근데 뭐가 명품인지 잘 모르는 엄마인지라 그냥 모르는 채로 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다.


기내용 가방 세 개만 가지고 입국한 우리 가족. 한국에서 아이가 입을 옷이 필요했다. 한국에 도착한 주 토요일, 동네 맘카페에서 광고가 나간 대로, 아이들이 직접 판매자로 나서는 벼룩시장에 갔다. 정말 너무 예쁘고 상태가 좋은 옷들이 많았다. 신이 나서 아이가 입을 옷들을 사들였다. 마구 1000원짜리로 플렉스 했다. 


특히 정말 한 번도 안 쓰고 상표만 뗬는지 상태가 너무 좋은 야구모자를 하나에 1000원을 주고 4개나 샀다. 이 야구 모자 중 하나는 LG 트윈스 모자였는데, 아이가 그 모자를 독일에서 쓰고 나가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이 모자 정말 멋져요. 어디서 샀어요?" 우리가 봤을 땐 그냥 야구모자인데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LG 트윈스 모자 덕분에 독일 식당에서 서비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자는 취지로 독일에서도 일부러 중고옷을 산 적이 몇 번 있는데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맘에 드는 옷이 별로 없었다. 뒤지고 뒤져서 여기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 패트롤 (Paw Patrol)"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3유로에 사거나 그랬다. 독일 벼룩시장에서 사람들이 직접 파는 중고 아동복은 여러 번 물려 입었는지 많이 꼬질꼬질해진 낡은 옷 밖에 찾지 못했다. 






이렇게 예쁜 한국 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독일로 돌아온 후, 여름 내내 H&M에서 판매하던 3벌 묶음 피카추 티셔츠만 입었다. 독일 유치원 아이들도 우리 아이와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유치원에 포켓몬 강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옷이 낡고 낡아 독일 벼룩시장에 볼 수 있을 상태가 될 때까지 입고 또 입었다. 하지만 딱 하나, 한국에서 가져온 LG 트윈스 야구모자는 여름 내내 잊지 않고 썼다.


그리고 이제 축축한 회색의 독일 가을이 왔다. 형형색색의 한국 아동복들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옷장 문을 열고 주황색 맨투맨을 꺼내 입는다. 독일에서는 보기 힘든 채도의 옷이다. 긴 여름 동안 감춰져 있던 색깔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독일의 가을, 그리고 아이의 한국 옷들은 그렇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대문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m_Na-yeon_at_LG_Twins_vs_KIA_Tigers_game_on_April_1,_2018_%282%29_%28cropped%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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