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초등 1학년의 학교 생활
독일 몬테소리 공립초등학교를 다닌 지 두 달이 넘었다.
우리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집에서 가깝고, 친한 친구들이 다니기 때문이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교육 철학에 감동받아 옆 도시에서 일부러 오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조금 민망할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등록했다.
몬테소리 학교는 신체감각을 활용해 추상화하는 학습, 다양한 연령이 한 교실에 섞여 있는 것, 그리고 숙제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숙제가 없다는 건 장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만큼 학교에서 스스로 다 끝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친구들의 실력이 그대로 다 보인다. 11월이 되니 아이네 반 1학년 신입생 중 벌써 교재 몇 권을 끝낸 아이도 있고, 아직도 자기 자리에서 알파벳만 쓰는 아이도 있다. 전통 수업이었다면 그냥 묻혀 갈 수도 있는데, 자기 주도 학습이다 보니까 누가 뭘 얼마나 하는지 다 안다. 처음엔 ‘6살이 뭘 안다고 자율성을 주지?’ 싶었는데, 이 학교의 분위기가 묘하게 아이들의 속도 경쟁을 자극한다. 잘하는 아이는 자부심을 갖고, 느린 아이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학생주도학습’이 부모가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사교육을 시킨다. 축구, 피아노를 따로 가르친다. 그리고 학교는 학교다. 역시 프로가 개입하니 다르다. 입학 당시 자기 이름 정도 쓰던 아이가 이제는 책을 혼자 읽는다. 여름 방학 동안 엄마표 한글에는 아무 반응 없이 뺀질거리며 지나치더니, 독일어 읽기가 가능해지자 갑자기 자기가 한글을 깨쳤다. 일주일에 한 번 한국어로 배우는 피아노 수업 숙제를 한글로 써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는 지금 너무 힘들단다.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너무 힘들어. 친구들이랑 놀이를 너무 많이 해서… 근데 또 놀고 싶은데 힘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정확히 오늘의 스케줄을 설명했다.
1교시 쉬는 시간에 놀기 → 체육시간에 또 뛰기 → 2교시 끝나면 또 놀기 → OGS(방과 후 돌봄. 1주일에 한 번 클럽 활동을 제외하고는 그냥 학교 내 광활한 놀이터에서 논다)에서 다시 잡기놀이를 해야 한단다.
독일 공립 몬테소리 1학년(만 6세)의 삶은 입학 설명회에서 들었던 “예술적, 창의적, 철학적 자율학습”이 아니라 거의 ‘태릉 선수촌’에 가깝다. 어떤 애들은 학교·학원 다니면서 공부 때문에 힘들다는데 이 학교 애들은 너무 많이 놀아서 힘들다. ‘노는 방식’ 자체가 체력 기반이다. 뛰기, 매달리기, 술래잡기, 축구 등등. 학생증은 커다란 놀이 창고의 카드키 기능도 있다. 학교 창고에는 공, 곤봉, 스케이터 보드, 스쿠터, 심지어는 서커스 기구까지 다 있다. 학생들은 이 창고에서 직접 놀이 기구를 꺼내 정말 하루 종일 논다. 매일이 체력장이다. 참고로 이 학교는 스마트폰은 물론 스마트워치도 반입, 사용 금지다.
신기하다. 이렇게 학교가 거대한 놀이터가 되어도 아이들은 다 알아서 글을 깨우치고, 숫자를 배우고, 언어를 늘리고, 세상을 알아간다.
어라, 이게 되네?
이래도 잘 굴러가는 거였다.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ontessori-school20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