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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Mar 04. 2023

꽃피는 봄이 오면

쓰레기 동산

영국에서의 두 번째 보금자리는 작은 강 옆에 있었다. 9월에 처음 온 이 동네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대학 도시의 활기도 좋았고, 술값은 쌌다. 그리고 나는 터키친구들이 여는 요리 워크숍에 가느라 화창한 3월의 강가를 걸었다. 20분 정도의 기분 좋은 산책길이었다. 오랫동안 비가 왔다가 모처럼 햇빛이 났다. 


낯선 경치를 즐기던 나는, 그림에서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비 오고 우중충한 영국 날씨에 지쳐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영국의 나무와 풀들이 쓰레기로 덮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겨울이 끝나고 떨어져야 할 나뭇잎은 다 땅에 있으니, 더 잘 보였다. 


"야. 진짜 심하다. 쓰레기 꽃동산이 되겠네."


개나리와 산딸기 덩굴이 엉켜있던 산책길은 쓰레기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대부분 술꾼들이 버린 유리병이나 담배꽁초들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동쪽에 있는 대학생들과 서쪽의 이민자들을 가르는 표시이기도 했다. 불가리아 슈퍼마켓이나 시리아 아저씨네 채소 가게가 있는 곳이었다. 환경탓 하지 말라고 하지만, 환경이 사람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부정하기 힘든 지점이 어디인가를 생각했다. 


영국 동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사람 많이 사는 곳은 다 그런 거 같다. 내가 지금 사는 독일 동네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폴란드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산다.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 각 격전지에서 독일로 피난 온 사람들은 언제 끝날질 모르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강제로 본국에 송환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 역시 자기네들이 독일 애들이랑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 거리가 더러워지고 있다는 것은 "외국인이 더럽힌다"란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외상을 입고 와서 독일에서 회복 중이다. 그리고 독일은 그들에게 쉽게 집이 되어주지 않는다. 


젊은 엄마는 히잡을 쓰고 아이 넷을 키운다. 아랫집에는 역시 애 넷을 키우는 사촌이 산다. 이 둘은 공동 육아를 하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1살부터 6살까지 8명의 사촌들이 모여 두 엄마의 감독 아래 아파트 한가운데 있는 모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장난감도 한 가득이다. 정말 아이가 많은 동네다. 그리고, 모래 놀이터에는 깨진 병 조각이 있다. 아니 여기도 쓰레기 꽃동산인 건 마찬가지다. 


알록달록 봄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 그리고 봄을 알리는 꽃과 더불어 앙상한 가지 아래 숨어 있던 그 많은 쓰레기와 담배꽁초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울창한 수렵이 그 많은 깨진 병조각들을 잘 가려줄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는 치우겠지 하면서.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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