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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May 09. 2023

지금도 한국이 싫으세요?

이민자 인지부조화 썰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동생 A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독일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A는 서로의 엄마들까지 절친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신랑이 될 동생의 약혼자는 독일교포 1.5세 회사원으로, A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산업 전시회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행복해야 할 동생은 많이 괴로워했다. 시어머니가 되실 분이 자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의 이런 안타까운 사정에 발을 동동 굴리던 A의 엄마가 나보고 A가 살고 있는 도시로 가서 사돈어른을 슬쩍 한 번 만나보라고 부탁을 하셨다. 아는 분 부탁이긴 하지만 사실 많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카톡이 몇 번 돌았고, A의 예비 시어머니, 최여사님은 놀랍게도 처음 보는 나에게 저녁을 사 주시겠다고 했다. 




최여사님과 딸이 자리에 나왔다. A과 약혼자는 학회 및 출장으로 둘 다 참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최여사님은 한식당에서 해물전골을 시켰다. 사람이 별로 없던 식당은 식탁 가운데 "부루스타"가 있는 매우 정겨운 스타일이었다. 최여사님이 마늘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전골 국물을 직접 덜어주셨다. 기침이 나올 정도로 매웠다.


http://flickr.com/photo/16105436@N00/2270401517


최여사님은 90년대 초에 유학생 남편을 따라 독일에 정착하셨다고 했다. 남편은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 가정형편 때문에 장학금이 나오던 B대를 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공부 잘한 아들 또한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서울대를 갔을 거라고 하셨다. 30대인 딸은 독일에 있는 대학을 들어가긴 했단다. 그런데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졸업을 못 했다며 눈을 흘겼다. 분위기가 아무래도 내가 최여사님에게 아부를 떨어야 할 타이밍 같았다. 


"아버님도 그렇고 다들 머리가 좋은 집안이시네요. 특히 90년대에 독일 유학 오실 정도면 정말 수재셨나 봐요."


그러자 최여사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한국에서 사람들이 하도 사기를 쳐서 여기 오게 된 거야.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거든."


마늘 냄새가 확 올라오는 새빨간 해물 조각을 씹다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싶어 30대 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딸은 묵묵히 공깃밥에 전골을 담아 비벼 먹었다. 왜 이 자리에 나온다고 했는지 후회가 막심했다.


"우리 A도 공부 잘하잖아요. 독일 와서 포닥까지 하는데."

"우리 아들도 공부 잘했어. 독일 여자애 중에 우리 아들한테 시집오겠다는 애들 많았어. 그중엔 변호사도 있었고, 의사도 있었어."


그 후 독일 한식당에서 한국말로 한국 욕을 듣게 된 한국 사람인 나는 더 있다가는 체 할 것 같아,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최여사님은 독일어를 거의 못하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갑자기 독일어 한 단어를 섞어, "Kennenlernen*하게 돼서 반가웠어요."라고 말씀하시고 자리를 비우셨다. 


*kennenlernen : 알게 되다




이게 거의 10년 전 일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머리가 좋아 공부 잘하는 집 아드님은 교포가 아닌 한국 여자분과 혼담이 한 번 더 오갔는데 다른 교포 1 세분의 양심선언(?)으로 파투가 났다고 했다. 


A는 그 후 한국에 귀국해서 다른 남자랑 딩크로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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