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백만 불짜리
어느 날 내 유튜브 피드에 "억만장자 파헤치기"란 비디오가 떴다. 3명의 성공한 사업가들이 단 돈 100달러를 가지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90일 안에 백만 불짜리 사업을 일구는 내용이었다. 인맥을 사용해서도 안되고, 자기의 신분을 숨겨야 하며, 개인 재산도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저 자신의 능력과 가치만으로 성공을 증명해 내는 지극히 미국스러운 내용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흑인 여성 사업가, 투자가, 음반회사 대표, 패션계 거물 모니크였다. 모니크는 처음 가보는,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동네에서 인맥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
우선 모니크는 도착하자마자, 차를 주차하고 반경 1km 안에 있는 교회를 검색했다. 목사님과 면담을 하고, 목사님의 도움으로 호텔에 공짜로 투숙한다. 그리고 모니크는 호텔 숙박 4일 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명단을 써가면서 구구 절절한 내용이 적힌 DM을 보낸다. 이런 모니크에게 무려 상원의원에 출마한 흑인 여성이 자기 집의 방을 공짜로 내준다. 처음 만난 목사님이 모니크의 신원 보증을 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모니크는 3달 안에 자신의 네트워크를 엄청난 속도로 구축해 나간다.
보통 외국에 살게 될 경우 직장이나 학교 등의 기댈 곳부터 마련하고 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만약 어쩌다 보니 연고가 하나도 없는 경우는 어떨까? 어떻게 결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을까? 모니크 같이 미친 듯이 DM 보내기? 외국어로? 종교도 없다면?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국 여자분 하나가 말을 걸었다. 1년 동안 살면서 한국 사람을 본 적이 없던 동네라 반갑게 인사했다. 십 대 아이들을 키운다는 B는 동네에 오래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모유수유를 하냐고 물어보았다. 만난지 10분도 안된 사이인데 B는 내 가슴을 너무 자연스럽게 손으로 만졌다. 조금 당황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분유를 먹인다고 했다. 그러자 B가 슬그머니 반말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머, 나는 애들 다 젖 먹여서 키웠어. 모유수유를 해야 애들이 안 아픈 거야. "
그리고는 B는 내 전화번호를 받아 갔고 이른 아침이나 한밤 중에 심부름을 시키려고 나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B는 한국 학점은행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는데 컴퓨터에서 인증이 안 된다고 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B의 집에 도착하자, B는 왜 늦게 왔냐고 화를 냈다. B는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MS 오피스가 없다면서 나에게 불법 CD를 설치해 달라고 했다. 나는 제출이 2주 남은 박사논문과, 기다리고 있을 아기를 생각하고, 잘 못하겠다고 말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B의 황당한 부탁에 질려 안전 손절을 고민할 즈음, 코로나와 대학원, 육아가 겹쳐 나의 한국 이웃의 존재감은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어느날 B가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B는 집에 놀러 오라고 했고, 아이가 나 말고 다른 사람과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겠다고 했다.
B는 2살 아이가 의자에 앉자마자 나에게 묻지 않고 아이 입에 사탕과 초콜릿을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B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야. 넌 엄마 아빠 둘 다 못생겼는데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니?"
사이다 발언을 해 주려다 방에서 나온 B의 자녀를 보고 얼른 멈췄다. 능숙한 미소를 지으며 곧 그 집에서 나왔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슈퍼파워가 생긴다. 저 사람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눈치와 촉은 인공지능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힘들다고 아무 하고나 만나면 안 된다. 4년의 좌충우돌을 거치니, 큰 아이들이 있는 엄마라고 내 육아 멘토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어이없음이 계속되면 조용히 빠져나와야 한다. 학연, 지연 같은 걸로 존재했던, 사회적 필터들이 하나도 없는 외국에선 진짜 한 번도 경험보지 못한 류의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주말, 페북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를 처음 만났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꼭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었고, 이왕 가는 거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놀아보고 싶었다. 그 엄마는 독일 엄마들 페북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플레이 데이트를 찾았다. 그녀의 아이가 내 아이와 동갑인 것을 보고 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정말 잘 놀았고, 우리 둘도 처음 만났지만,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라인강을 따라 아이들과 산책하며 육아정보도 교환하고, 서로의 고향 얘기를 했다. 우리가 기차를 타자 금쪽이와 동갑인 아이가 선로 너머에 서서,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난 20년 넘는 세월 동안 총 6개 나라에서 새 출발을 해봤던 나는, 이제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지 깨닫게 되었다. 카톡, 와츠앱, 페북, 인스타, 신문광고(?). 뭐든지 좋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려면 가지고 있는 채널을 몽땅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홈그라운드가 아닌 여기서 아쉬운 건 바로 나다. 시간과 경험으로 단련된 촉으로 계속 시도한다. 비록 내가 모니크처럼 삼 개월 만에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백만 불짜리 사업은 못 일구겠지만, 이제는 나도 보낸 메세지에 답장이 안 와도, 어이 없는 사람을 만나도, 무너지지 않는 백만 불짜리 멘털은 생긴 거 같다. 좋은 사람 만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