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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May 08. 2023

여행은 무계획이 제맛

(거의) 공짜로 독일여행하는 법

드디어 도이칠란트 티켓을 샀다. 


이게 있으면 한 달 49유로에 전국에 있는 기차,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5월 1일부터 시작했는데 디지털 후진국 독일답게 앱 결제가 제대로 안 된다고 맨날 뉴스에 나왔다. 속이 터져서 아예 중앙역으로 갔더니 나 같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드디어 티켓을 샀다. 


지금 독일사람들은 이 티켓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해외"여행 루트를 짜고 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덴마크,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이렇게 9개국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포럼등에 가보면 사람들이 벌써 꿀팁을 나누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관심 있는 나라는 룩셈부르크이다. 우선 기차를 타고 국경까지 간다. 그리고 룩셈부르크는 대중교통이 원래 공짜니 당일 치기로 다녀오면 돈도 안 들고 좋을 거 같다. 이런 식으로 국경까지 가는 기차 편을 찾으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나 스위스 바젤 같은 유명 도시도 갈 수 있단다. 


도이칠란트 티켓은 단점이 있다. ICE나 IC 같은 고속 열차는 이용할 수 없다. 우리 집에서 스위스 바젤까지 고속열차를 타고 가면 3~4시간 정도 걸리지만 도이칠란트 티켓으로 가려면 5~7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이 티켓은 정말 혁신이 아닐 수 없다. 고속열차 같은 건 운이 좋으면 세일가에 구매할 수 있지만, 원하는 시간대에 떠나려면 보통 비행기표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기도 한다. 도이칠란트 티켓은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지만, 아무 때나 마음 가는 데로 떠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


관광객들도 도이칠란트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돈 없이 하는 여행의 맛을 아시는 분들은 당장 독일로!)




우리 집 도이칠란트 티켓 첫 개시도시는 쾰른이었다. 이상하게 교회, 성당 건물을 좋아하는 우리 집 꼬맹이에게, 만드는 데 600년이 걸렸다는 그 유명한 고딕 건물 쾰른 대성당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남편은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다고 했다. 작년 한국 방문 중, 남편은 잠실 롯데 타워를 처음 보고 대감동을 받았다. 남편은 만 3살이 된 금쪽같은 아들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나누고 싶어 했다.


 "금쪽아, 롯데 타워 좀 봐, 정말 높지? 너무 멋지지 않니? "


 한국의 자랑, 아빠의 최애 빌딩, 롯데 타워를 본 아이의 첫 반응은 이 것이었다.


"아빠, 저기 쓰레기차 지나가!"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쾰른 성당에 전혀 감동을 받지 않았다. 쾰른 성당에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관광객들이 뒤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가운데 일요일 미사 중이었다. 아이는 들어가자마자 나가자고 칭얼댔다. 총 100초 정도 성당에 머물렀다. 앗, 벌써 위기다. 오늘 계획 이게 다였는데? 나는 INTP다. 여행 일정 짜는 거 해 본 적 없는 여자. 


쾰른의 다른 명소들을 찾아 성당 뒤 쪽으로 걸어갔더니, 이번에는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다. 주위에 연주회가 있었는지 악기를 매고 연미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 무리 나와 거리에서 대성통곡하는 아이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아까는 많았던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나도 안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쾰른까지 와서 맥도널드 아이스크림만 먹고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폭풍검색을 했더니 가까운 곳에 어린이박물관이 있었다. 전철로 두 정거장을 간 후, 걸어서 600미터. 구글맵을 켰는데도 헤매다가 친절하기로 소문난 쾰른 시민다운 어떤 아주머니가 지름길을 알려주셨다. 아이는 갑자기 신이 났는지 손을 잡고 빨리 뛰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박물관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현장구매도 안되고, 두 시간 뒤에 와야 표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을 계산하니 집에 갈 시간이 빠듯할 거 같았다. 아이가 공룡 전시관으로 마구 뛰어 들어가려는 걸 잡아왔다. 그냥 포기하고 박물관에서 나왔다. 


나오는 길에 커다란 놀이터가 보였다. 3미터는 족히 되는 높이에 계단도 없이 그물로만 올라갈 수 있는 미끄럼틀이 보였다. 아이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못하겠다더니 끝까지 올라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그러다 또래 아이들을 만나서 신발을 벗고 이번엔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갔다. 비도 조금씩 내리는데 집에 가는 애들이 없었다.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가 묻었다. 


나중엔 아예 양말까지 벗고 놀다가 집에 안 간다는 아드님을 살살 꼬셨다. 아이의 최대 관심사가 지하철, 버스, 기차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초행길이라 아이 손을 잡고 한참 헤매며 물어물어 집에 왔다. 무계획 당일치기 여행, 별로 한 건 없지만, 우리 가족의 머릿속 지도가 조금은 커졌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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