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섭섭 애틋한 모녀의 세계
엄마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거의 한 달을 계셨는데도 엄마가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은 손주를 위해 잔뜩 가져오셨던 책들과 장난감들 뿐이다. 나는 외국에 사는데도 한국 음식을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아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독한 년"으로 통한단다. 나는 엄마가 독일에 올 때마다 한국 음식 사고 싶으면 한인 마트 가서 사면 되니까 그냥 아무 것도 가져 오지 마시라고 항상 말씀드린다.
정말 눈치 없는 독일 사는 딸년,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금지옥엽 손자에게 9첩 밥상은커녕 빵쪼가리에 과일 몇 개만 먹여 유치원에 보낸다. 손자는 외할머니가 보시기에 아주 삐쩍 말랐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묻자 손자는 "미역국"을 외친다. 그 말인즉슨 솜씨 없는 딸년이 집에서 미역국을 진짜 끓여서 애한테 먹였다는 뜻일 텐데, 아이고 얼마나 맛이 없었을까. 할머니가 차려줄게. 엄마는 오자마자 한국에서 가져오신 재료로 직접 미역국을 끓이신다. 그런데 독일에서 직접 끓이신 미역국이 맛이 이상하다고 하신다. 이렇게 맛없는 미역국을 끓여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실 만큼. 물이 다르고 재료가 다르니 맛도 이상하다고. 독일, 여기서 또 마이너스 5점을 받는다. 이런 이상한 동네에 굳이 살겠다는 딸년은 마이너스 50점이다.
딸년의 살림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별로 되지도 않는 설거지 거리를 깨끗이 닦이지도 않는 식기세척기에 넣는 게으름이라니. 화가 난 엄마는 큰 소리를 내며 내가 테트리스처럼 넣은 접시를 다 꺼내신다. 딸년은 혼나면 안 되니까 몰래 밤에 엄마가 주무실 때 식기 세척기를 돌린다. 그 흔한 전기 주전자도 없이 사는 딸년은 답답하다. 하나 사라고 해도, 계속 필요 없다고만 한다. 딸은 커피를 좋아한다면서 이상하게 생긴 프렌치 프레스를 쓴다. 요즘 커피 머신 워낙 많은데, 왜 저리 궁상맞게 사는지 모르겠다.
손주의 양말, 속옷이 들어 있는 정리함은 가관이다. 딸년은 이쁘게 손주 속옷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빨래 걸이에서 그대로 뒤죽박죽 정리함으로 던져버린다. 엄마 친구 딸 누구는 정리를 그렇게 잘한다는데. 엄마는 "내가 잘못 가르쳐서 네가 이러고 산다"라고 하신다. 엄마는 앉아서 손주 속옷을 이쁘고 작게 개어서 차곡차곡 정리하셨다. 그러자 이제 혼자서 옷을 척척 입을 수 있는 손주는 크기가 같아진 속옷과 양말들을 구분을 못해 자꾸 아침마다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내 살림, 그게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 건데. 딸년은 쪼끔 억울했다.
엄마가 오고부터 우리 집 냉장고는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해 줄려고 나의 필살기 요리를 딱 한번 했다. 매일 들어오는 비싼 식재료들에 밀려 냉장고 뒤 편에서 말라가고 있던 불고기 거리로 중국식 블랙 페퍼 소스를 넣어 만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가 만든 반찬만 먹고 내 음식은 입에도 대시지 않았다. 엄마 나이가 되면 낯선 향신료는 싫다 하신다. 나 역시 엄마가 오고 나서부터 반이 넘게 없어진 우리 집 설탕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엄마에게 설탕을 왜 이리 요리에 많이 쓰시냐 했더니, 그것은 네가 요리를 안 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다 어느 아침, 엄마는 손자를 먹이려고 아침부터 생선을 구우셨다. 유치원에 가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오는데 엄마는 "애기가 남긴 거 네가 다 먹어 치워라." 하시며 4살짜리가 먹다 남긴 생선 부스러기와 밥알이 담긴 접시를 나에게 들이미셨다.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닌데. 며느리들한테도 "우리가 먹어 치우자"하시려나? 그래도 딸이 편해서? 니 새끼가 먹은 음식인데 뭐가 어때서? 엄마도 다 자식들이 먹다 남긴 찬밥 먹으면서 살아서?
새벽에 일어나 삼 남매 도시락을 싸고, 국 없으면 아침을 드시지 않는 아빠를 위해 된장국을 끓이던 엄마가 생각났다. 애들 바글바글한 집에서 태어나 금지옥엽 외삼촌의 고기반찬을 손댔다가는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며 깔깔거리던 이모들의 수다가 생각났다. 그 외삼촌에게 시집와서 친구 하나 없이 외지에서 애들만 키우던 외숙모가 생각났다. 그 외숙모가 외할아버지에게 며느리 노릇을 잘 못한다면서 흉보던 이모들의 카톡방이 생각났다. 그냥 다 신물이 났다.
아이가 남긴 잔반을 한참 바라보았다.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싹싹 다 긁어서 먹어 치워 버렸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사는 게 어떻겠냐는 엄마의 제안을 칼처럼 끊어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엄마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의 다리는 더 아팠으며, 손자가 잠자리에 든 밤에는 엄마는 방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한국으로 떠나시던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서 직접 보기 전에는 몰랐어. 사진을 보면 우리 손자 옷이 항상 너무 꾀죄죄한 거야. 내가 속으로 그랬지. 얘는 옷 세탁도 안 하나. 그러다가 독일 놀이터를 한 번 가보니까 알겠더라고. 아, 그래서 애 옷이 그랬구나. 맨날 모래 위에서 진흙에서 뛰 노는데 뭔 수가 있어. 내가 너희 집에서 아무리 삶고, 뭐 하고 다 해봐도 그 얼룩이 안 빠지대.
그리고 우리 손주만 그런 게 아니야. 애들 보니까 다들 다 꾀죄죄해. 처음 와서 왜 너희 집은 청소를 안 하나, 왜 이렇게 모래 투성인가 했더니, 그게 다 우리 손주 녀석 때문이더구먼. 지금 할머니 신발에도 모래가 한가득이야. 아마 한국 가서도 이 모래가 나올 거야. 왜 저러나 이해가 안 됐는데. 사람은 역시 직접 와서 봐야 해.
우리 손주가 너무 행복해 보여. 그냥 여기서 키워. 그게 맞는 거 같아.
그리고 독일 음식은 짜다고 손에도 안 대시던 엄마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딱딱해서 맛없는" 독일빵과 "기름기 많은" 치즈 요리를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드셨다. 그리고는 할머니 한국에 가지 말라는 손주에게 빨리 집에 가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작년에는 엄마가. 올해에는 딸이. 이렇게 스무 번이 넘도록, 이번에도 우리는 서로를 공항에서 멀리 띄어냈다. 어이 가. 빨리 집에 가. 응. 집에 가서 전화할게. 언제나 우리의 작별은 이상하게 부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는 독한 딸년은 언제나 엄마랑 가까이 살고 있는 느낌이다. 화병 나도록 섭섭하고, 한없이 미안하고, 징그럽게 애틋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