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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Nov 17. 2020

아이의 선택과 책임의 범위

아이의 선택과 책임의 범위


  "엄마가 너에게 선택하라고 했었잖아. 너의 선택이었잖아."

    어제 9살 까꿍이에게 내가 한 말이다. 아이에게 그저 미안하다고 얘기하기가 싫었다.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었나보다. 아이에게 이기고 싶었나? 어제는 마음이 괜찮았다. 그렇게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다시 그 상황을 떠올려보니 끔찍한 엄마다. 9살 아이에게 환경이 다 바뀔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하라고 했다. 아이는 선택했고, 난 그 선택을 존중하여 그것을 그대로 따라줬다.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줬다고 나는 까꿍이에게 '너의 선택이었으니 어쩔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9살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 jontyson, 출처 Unsplash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그 때 나는 "음질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스피커 만들기"가 인생의 목표였다. 그리고 스피커를 만들기 위해 공과대학 전자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입학해서 나의 목표를 얘기하니 선배들이 말하는거다. "응? 스피커를 만들려면 기계과 같은 전공이 더 맞을 것 같은데?" 아뿔싸. 난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전자과에 가면 스피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혼자 판단했고, 판단이 맞는지 검증하는 기회가 없었다. 당연히 전자과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나의 지식으로만, 나의 생각으로 큰 결정을 해버렸다. 내가 수능을 너무 못 쳐서 원하지 않는 대학교에 왔으나, 그래도 전공은 제대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틀어져버렸었다. 19세, 20세였던 나도 옳지 않은 선택을 했다. 아는 것이 그것 뿐이라서 그런 선택을 했다. 


  그럼 까꿍이는 무슨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었을까? 까꿍이와 19세 릴리. 그 둘은 선택의 기준을 잘 알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와 19세 나. 선택의 기준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눈부터도 다르다. 선택하는 것이 시야가 넓어진 지금도 어려운데 9살 까꿍이는? 물론 까꿍이에게 선택 전 엄마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단점을 설명해주긴 했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다. 고등학생 때 어른들이 선택에 도움을 주는 말씀을 옆에서 하시면 좋았나? 잔소리처럼 여겨졌다. 귀찮고 싫었다. 까꿍이도 내가 얘기하는 장단점이 귀에도 안 들어왔을 것이다. 그저 자기의 기준에 따라 자기가 좋은 것을 생각해보고 선택했을 것이다.


  까꿍이가 선택했다고 모든 책임을 까꿍이가 지는 게 옳지 않았다. 어젯밤까지도 당연히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아침이 되어 생각해보니 모두 내 책임이다. 아이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말았어야 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했던 그 상황을 엄마인 내가 만들었고,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했었다.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선택의 상황을 만들었다면,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선택지를 만든 내가 책임져야 했다. 아이에게 "너의 책임이야!"라고 매정하게 말하지 않았어야 했다. "엄마가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라고 했어야 했다. 


© lmtrochezz, 출처 Unsplash

 어릴 때부터 아이가 선택하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줬다. 빨간색 옷과 파란색 옷 무엇을 선택할래?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래? 당연히 선택은 아이가 하는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물론 선택의 기회를 자주 주는 것은 좋다. 옷, 음식 같은 단순한 것들은 본인이 선택했을 때 바로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 9세, 더 어린 아이에게 선택하게 하고, 결과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아이 교육방법이었다. 하지만 전학문제는 아이에게 맡겨서는 안되었다. 아이의 시선으로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 


   한없이 미안하다. 까꿍이가 엄마의 이런 태도로 인생의 중요한 선택지에서 결단내릴 때 용기있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까봐 걱정된다.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감을 벌써부터 느끼게 될까봐 걱정된다. 어릴 때 선택 후에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책임은 선택 후에 따라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이의 환경과 같은 중요한 문제는 의사결정이 확실한 부모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때 선택의 기회가 과연 옳은지 그른지 검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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