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입주청소를 15년째 하고 있는데요. 이 집이 베스트 5 안에 들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 인테리어를 마치고 입주청소를 하러 오신 분의 얘기다. 지금 집 인테리어할 때 우리는 행복했다. 사실 입주청소 사장님이 그렇게 얘기하실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전제를 깔아둔다. 그래. 우리 부부는 둘 다 덕후다! 어디 하나 꽂히면 끝을 본다. 종목을 달리하면서도. 내가 좀 더 심각한 덕후인 줄 알았는데, 인테리어와 최근 경향을 봤을 때 안타깝지만 남편도 나 못지 않은 덕후다. 우리는 그 때 인테리어에 대한 덕질을 한 거다. 인테리어 후 몸무게를 재어보니 나 2kg, 남편 3kg 빠져있었다. 우리는 인테리어에 푹 빠져있었다. 두 번째 전제다. 난 가성비와 청소의 간편함을 추구하며, 남편은 최고급을 추구한다. 인테리어를 하며 우리는 이렇게까지 우리가 안 맞았던 적이 없다고 느낄 만큼 치열하게 싸웠다. 결국 중간없이 '그래, 화장실은 내맘대로 할테니 부엌은 당신 맘대로 햇!' 이런 결론이 났다. 화장실은 내 맘대로, 부엌은 남편 마음대로. 그리고 서로의 결정에 절대 의견 말하지 않기.
3년 반 전 우리는 처음으로 집을 샀다. 꿈같았다. 드디어 우리집이라니! 계약은 2월 이사는 8월, 공사는 4월 시작. 우리는 계약하던 날, 구조도를 뽑았다. 그리고 구상을 시작했다. 인테리어의 ㅇ도 모르는 우리가 인테리어라니. 하나도 모르니 답답했다.
첫주 주말.
인테리어 관련 쇼룸을 찾아갔다. 목동에 있던 어떤 업체였다. 이제는 쇼룸이 필요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그때는 자재는 무엇인지, 집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전혀 모르는 인린이(인테리어 어린이)였다. 인테리어 가격에 후덜덜 손 떨면서 나왔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우리집과 목동쪽 인테리어는 차원이 다를수밖에 없음을. 매매가만 해도 우리집의 3배가 넘는 그 집들의 인테리어와 우리집 인테리어가 같을 수 있나. 더구나 그 업체에서 보여준 포트폴리오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게 비싼 아파트들의 포트폴리오였다.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할 수 없다. 인테리어를 하지 말까?"
"야가 머라노. 10년 넘은 집에 그냥 들어가서 우째 살끼고?"(이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는 거야? 10년 넘은 집에 그냥 들어가서 어떻게 살거야?"
"아놔. 집 살때도 돈이 많이 들었는데, 인테리어에 이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들이면 어떻게 해?"
"왜 돈 없나. 은행 가면 돈 준다. 은행에서 돈 받아서 하자."(왜 돈이 없어? 은행 가면 대출 되잖아? 은행에서 대출 받아 하자.)
"흠.. 일단 이 상태로 그대로 들어가서 살 수는 없으니 더 알아보자."
두 번째 주중 : 밤마다 구조도를 끼고 열띤 토론을 한다. 요리에 관심많은 남편은 싱크대부터 욕심이 가나보다. 11자 주방을 하자고 한다. 근데 어떤 걸 해야할지 자재도 또 모른다. 과연 그 구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궁금해진다.
두 번째 주말
경기도 광주 오포에 있는 유명 싱크대업체를 방문한다. 완전 인테리어 초보인 두 명이 가니 아저씨가 약간 웃겼나보다. 아직도 그 날이 기억난다. 우리가 가능한지 안한지부터 궁금했던 싱크대 구조를 아저씨는 우리말만 듣고 바로 그림으로 착착 그려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이런 그림으로 나오려면 물길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네? 물길이요?"
그렇다. 우린 기본적인 생각조차 안하고 업체를 간 것이다. 물길을 바꿀 수 있는지, 어디에 연결이 되어 물이 나오는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일단 알아보고 다시 온다고 했다.
세 번째 주중 : 인테리어 업체를 검색한다. 전화한다. 현재 싱크 위치를 옆으로 3M정도 이동하고 싶은데 가능한지. 업체들은 이 동네에서 그렇게 공사한 경우가 없다고 한다. 한번도 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만약 불가능할 경우 호스를 둘러 물길을 깔아야 하는데 그 사이 누수가 발생할 수도 있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한 업체를 찾았다. 일단 해보겠다고.
세 번째 주말 : 물길을 바꿀 수 있다는 업체를 찾아갔다. 신생업체였다. 하지만 자신감있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계약했다. 남편은 견적따위 뽑지도 않는다. 그냥 믿음이다. 아이고..
네 번째 주중 : 본격적으로 부엌 구상을 시작한다. 티비에 나오는 그런 주방이다. 인테리어 사장님이 물길은 내준다고 했으니 뭐. 원하는 것을 구상만 하면 된다. 돈은? 은행이 주니까.
네 번째 주말 : 우리 집 근처 싱크대 전문 제작업체를 찾아가본다. 우리가 원하는 구조를 뽑아보고, 엄청난 자재의 종류, 자재에 따라 얼마나 견적차이가 나는지 한번 보고 왔다. 그때는 몰랐다. 인테리어 사장님과 싱크대 또한 함께 맞출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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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다 쓰면 지겨울테니까. 우리는 주중 밤마다 열띤 토론을 했으며, 주말이면 인테리어 관련된 업체를 찾아다녔다. 싱크대업체만해도.. 알고있는 브랜드는 다 가봤고 다 견적내봤다. 엄청 많은 자재도 보고 다녔다. 드디어 공사시작전 미팅.
계약할 때는 몰랐는데 우리랑 계약한 인테리어 사장님은 별다른 3D디자인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자재를 고르라고 하셨다. 오 마이 갓! 자재는 알았지만 그게 집에 붙여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좀 봤어야 알지. 도배지 색도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고르고 바닥도 상상으로 아트월도 상상으로.. ㄷㄷㄷㄷ 사진이라도 많이 봤어야 머릿속에 그림이라도 그려지지.
그때부터 우리는 밤마다 사진검색을 시작했다. 거실은 어떻게 꾸몄는지, 부엌은 어떻게 꾸몄는지, 화장실은. 현관은 등등.. 그리고 사장님더러 우리의 컨셉을 전달했다. 공사시작. 아.. 몰랐다. 모든 것을 그렇게 많이 골라야 하는지. 화장실을 고치려고 하니 변기, 세면대, 샤워기 등을 골라야 했고, 욕실 조명을 골라야 했고 수납장을 골라야 했다. 현관을 하려니 현관 타일을 고르고..........................................
우리는 무엇을 골라야 할 때마다 사진을 엄청 찾아봤다. 사진을 보는 시각이 쌓이면서 PINTEREST에 있는 사진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봤던 걸 또 보고 또보고.. 싱크대는 인테리어 사장님보다 자재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이 알아서 사장님을 가르쳐가며 공사를 하다가 결국.. 다른 업체에다가 맡겼다. 우리가 원하는 자재를 사장님이 모르시고, 싱크 담당 업체측에서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완성되었다. 밤마다 사진 찾아보고, 물건 찾아보고, 이사갈 집에 공사 잘 됐나 확인하고. 그렇게 힘든 한달을 보냈으니 입주청소하시는 분이 그렇게 얘기하시는 게 큰 칭찬으로 느껴졌다. 한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난다. 누구나 인테리어는 그렇게 하겠지? 그 다음은 가구얘기를 해야하는데.. 가구는 다음 기회에...(사실 인테리어 덕후는 남편, 난 가구 덕후다.) 인테리어 끝나고 허망했다. 6개월 넘게 인테리어에 올인하고 있었는데 밤마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졌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또 다른 덕질을 시작했다.
요즘은 곧 이사갈 집 구상한다고 밤마다 바쁘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