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한 이들을 향했던 어느 외국인 신부의 헌신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말처럼, 많은 경우 종교는 배타적이다. 하지만 이런 종교도 스스로 테두리를 벗어나 온 세상을 껴안는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신을 향한 믿음이 대중을 위한 선한 실천으로 치환되는 경우, 다시 말해 개인의 신념이 ‘인류애’라는 최대선으로 귀결되는 경우다.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나 고타마 싯타르타가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어 추앙받게 된 것도 선한 실천으로 점철된 당신들의 삶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다큐멘터리 영화 <오 마이 파파>의 주인공 소 알로이시오 신부 또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전쟁의 상흔으로 피폐해진 1957년 한국에 찾아와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하고 평생 약자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고아원을 짓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으며, 거리를 떠돌던 부랑자들을 모아 보살폈다. 영화는 교리를 실천하는 종교인이면서도 바람직한 ‘어른’이자 위대한 사회 복지가로서 그의 업적을 조명한다.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을 세워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배움의 장을 제공해 온 소 신부의 철학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그는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 학교에 들이고, 한정된 정원 때문에 한 가정 당 한 명의 아이만 입학을 허가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곳’을 찾아 한국행을 택했던 그는 같은 이유로 필리핀, 온두라스, 과테말라, 브라질, 멕시코에도 학교를 세운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공평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어떤 국가와 정부도 하지 못하는 ‘착한 복지’를 한 개인이 이뤄온 셈이다.
60여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없이 사랑스럽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뼈아프다. ‘보호’라는 명목 하에 전후 부산의 ‘영화숙’에 강제 수용되어 학대당한 거리의 아이들, 그리고 “‘소년의 집’이 아닌 일반 학교에서는 마약이나 담배 같은 것만 배운다”는 과테말라 소년까지. 영화는 한결같은 소 신부의 선행과 더불어 상존하는 가난과 불행의 이면도 외면하지 않는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기 급급했던 이 나라의 권력자들과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 동네에 생기는 게 싫다”는 온두라스 ‘소녀의 집’ 부지 주민들의 태도 또한 이방인 선교자와 대비되며 영화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럼에도 영화는 소 신부가 물꼬를 튼 마리아수녀회의 활동에 함께하는 이들을 조명하며 끝내 희망의 빛을 밝힌다. 가난한 이들을 도우면서 정작 자신은 누구보다도 가난하게 생활해 온 그는 수녀들의 본보기가 되고, 한편으로는 외부의 동료들을 만들기에 이른다. 부산 소녀의 집에서 자란 여자아이가 수녀가 되어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이들을 돌보는가 하면, 학교를 만들겠다는 말에 자신의 땅을 내놓거나 건물을 짓는 데 쓰라며 거금을 기부하는 이도 있다. “내가 시작했다고 해서 내가 끝낼 필요는 없다”는 소 신부의 말은 그렇게 ‘우리’의 힘으로 증명된다.
기도 중에 아이가 부르면 기도를 멈추고 아이에게 가라. 아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 먼저 봉사해야 한다.
수녀 이 엠마누엘라가 기억하는 소 신부의 이 말은 영화를 관통하며 오랜 울림을 남긴다. 지금 당장 가장 절실하게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온정을 베푸는 것. 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교리이자 복지 사회의 모토가 아닐까. 소 알로이시오 신부와 수녀들, 이들을 둘러싼 천진난만한 얼굴의 아이들까지. <오 마이 파파>에 담긴 흑백사진 속 ‘행복한 한 때’는 이제 지금의 우리가 해내야 할 숙제일 것이다. 2016년 11월 1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