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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Jun 30. 2023

그리운 산하(山河)

   태초부터 그곳에는 산과 강, 그리고 들이 있었다. 저 멀리 북서쪽에는 지리산의 천왕봉과 중봉이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고, 그 주위로는 무수한 산들이 그들을 향해 도열해 있다. 그중의 막내 격인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널따란 들판의 남쪽에 드리워져 있다. 이 들판과 산이 만나는 지점부터 산허리까지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뒷산인 이 야산 정상에는 아름드리 노송(老松) 대여섯 그루가 수호신처럼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긴 여행에 지친 백로 무리들이 이 고목 위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소나무 가지에 하얀 꽃이 핀 것 같았다. 소나무 발치에는 풍진세계를 살아오던 나약한 촌부(村夫)들이 신에게 의탁하던 서낭당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폐허가 되었고, 그 자리에는 검은 돌무더기만 잔해로 남아 을씨년스레 흩어져 있다. 동네 북쪽, 평야 너머로는 용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용두산이 들판을 가로지르다가 화석이 된 채 웅크리고 있다. 용의 기세로 뻗어 나오던 용두산이 맞은편 산과 만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예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마을의 동쪽과 서쪽으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야산들이 마을과 주변의 들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동네 남쪽의 연화산에서 발원한 영천강은 마을 옆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용두산에 부딪혀 진로를 서쪽으로 급격하게 튼 다음 들판 한가운데로 유유히 흘러간다. 기역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감으면서 흐르는  강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사행천(蛇行川)이다. 그리 크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작지도 않은 영천강은 주변의 농작물과 주민들의 식수를 책임지는 생명의 근원이었다.  강은 각종 어패류와 물풀 등 다양한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개구쟁이들에게 여름에는 야외 수영장, 겨울에는 아이스링크라는 신나는 놀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영천강은 또한 정월 대보름날 용왕님께 제를 올리는 또 다른 영적(靈的)인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범약(凡弱)한 인간들이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일탈된 행동을 보일 때면 이 절대자는 이 사행천의 강물을 범람시켜 주변의 농경지와 마을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뱀처럼 물어뜯고 할퀴곤 했다.


 

   강 상류로부터 실려 온 토사들은 유속이 느린 이곳에서 퇴적되어 비옥하고 널찍한 평야를 형성하였다. 농부들은 이 들판에서 주식인 벼, 보리는 물론 우엉, 마, 등의 특용작물도 재배하였다. 강 위에 위치한 보(洑)에서 흘러내려온 농업용수는 들판 사이로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수로를 통해 농작물에 공급되었다. 수로에는 송사리 떼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고, 바닥에는 커다란 우렁이들이 청태를 몸에 두른 채 엉금엉금 기고 있었다. 유기물이 풍부하고 물 빠짐이 잘되는 사질토(沙質土) 또한 농작물을 튼실하게 키워내었다. 모진 겨울을 견뎌낸 보리가 봄이 되면 파릇파릇 생기를 찾고, 여름에는 웃자란 보리 줄기가 만들어내는 풀 파도 사이로 종달새가 날아올랐다. 풀숲에 숨어 있다 인기척에 놀란 까투리들이 들길을 따라 내달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누렇게 익은 벼가 들판을 황금빛으로 수놓는 가을 녘에는 이를 바라보는 촌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모든 생명체가 땅 밑에서 숨죽이고 있는 겨울철에도, 서릿발 선 논에서 공차기를 하는 꼬마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동네의 공식 명칭은 신촌(新村)이었지만 사람들은 새마을 혹은 새말이라 불렀다. 태고 적부터 산 좋고 물 맑은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촌락이었다. 마을의 시조(始祖) 격인 그들은 주변의 황무지를 일구어 논밭을 개간하고 그 사이로 물길을 내었으며, 동네 곳곳에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었다.

    부락 입구에는 커다랗게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떡 버티고 서 있다. 사람들은 이 나무 역시 마을의 수호신이라 믿고 있었다. 가난과 고난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織造)된 삶 속에서, 부락민들은 이 느티나무에 새끼줄을 두르고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곤 했다. 나무 아래에는 둥그렇게 생긴 커다란 돌이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채 묵묵히 서 있다. 이 돌 또한 주민들이 무탈한 삶을 갈구하기 위하여 세운 선돌(立石)이었다. 무더운 여름,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이 선돌을 발판으로 느티나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 읍내 시장 보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비린내 나는 생선 한 마리라도 사 오실 거라는 믿음과 함께. 70여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바깥쪽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멀리서 보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러한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시샘이라도 하듯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철도가 놓였다. 1925년도에 개통된 이 철도는 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동네를 양분시켜 놓았다. 기찻길 주변의 이 마을은 기차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기차 사고로 기존의 생명이 스러져 간 삶과 죽음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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