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황량하고 쓸쓸했다. 2월 말이라고 하지만 대기는 아직 차가웠고 바람도 거세었다. 마음은 저만치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봄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옛 추억으로 가득 찬 고갯길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까까머리 학생시절부터 숱하게 오르내렸던 길 양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돌부스러기들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는 소리가 산중의 정적을 깨뜨린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멩이들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 할지라도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흙으로 변한다. 우리의 육체 역시 세월에 풍화되어 언젠가는 흙으로 되돌아간다. 반백년의 풍화작용으로 나의 까까머리는 어느새 백발이 되었고, 팽팽했던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고갯마루 아래에는 손바닥만 한 논밭 뙈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텅 빈 들판 위로 촌부(村夫)들이 짊어졌던 가난의 상흔이 오버랩된다. 먹거리가 귀한 늦겨울, 주린 배를 움켜쥔 참새들이 논바닥에 떨어진 볍씨를 찾아 헤매고 있다.
부박한 농촌에서의 삶은 내 인생행로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 몸을 침범한 결핵균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의 인생행로에 걸림돌로 작용하여 왔다. 이 병원체는 생의 고비마다 폐, 늑막, 임파선 등의 장기를 번갈아 요구하였으며, 그때마다 나는 그들과 처절한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았고, 기나긴 투병 속에서도 내가 설정한 인생의 목표를 대부분 달성하였다. 독하고 모진 결핵균도 삶에 대한 나의 열정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곳이지만, 내 영혼과 육신의 안식을 위해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련다. 마치 헤스터 프린이 자신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낙인찍은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저물고 그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른다. 산허리에 걸린 태양이 내 인생의 좌표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화려하게 피어 있던 이 산길은 초로(初老)에 접어든 나그네가 한 세상을 다하고 고향집으로 회귀하는 길이 되었다.
별안간 늦겨울의 삭풍이 휘몰아치더니 산길의 흙먼지가 바람에 휘날린다. 우리의 인생 역시 흔적 없이 사라지는 한 줄기 바람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자, 저만치 나의 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마지막 구절을 읊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갈지니(聊乘化以歸盡)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樂夫天命復奚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