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가가가지이다. 어차피 올라갔다가 내려올 산에 뭣 하러 올라가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 반면, 등산은 우리의 인생과 닮아서 등산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다소 철학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비단 등산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시각이나 거기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판에서 특정 사건이나 정책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펴는 경우가 이러한 현상에 대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직장에서 은퇴한 노령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등산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으며, 이는 아웃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반인들이 등산을 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증진이나 여가활동이다. 반면 전문 산악인과 같이 등산에 목숨까지 거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에게 등산은 도전정신이나 성취감 고취 등 자기만족이나 자아실현이 주된 목적일 것이다.
등산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다준다. 우선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산은 또 에너지 소비가 높은 운동으로 체지방 감소에 효과가 있어, 비만과 운동부족으로 오는 만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모험심과 성취감을 맛보게 함으로써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해 주고, 만족감이나 자신감을 길러 우울증을 해소하는 등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운동 중에서도 등산이 여러 가지 면에서 운동효과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등산이 오히려 퇴행성관절염을 유발하는 등 건강을 해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산도 인간처럼 각기 나름대로의 개성이나 특색이 있다. 농촌의 야트막한 야산도 있고, 평지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산도 있다. 알프스의 산처럼 높다란 산이 연속하여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가 하면, 제주도의 한라산처럼 바다 한가운데 용암이 솟아 홀로 산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화려한 산이 있는가 하면, 그저 흙덩이를 부어 놓은 듯이 밋밋하게 생겨 단조로운 산도 있다.
우리나라의 산들은 높이나 규모에 있어서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다. 따라서 웅장하거나 장엄한 맛은 없으나, 대체로 올망졸망하면서 화려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국토를 표현하는 말로 "삼천리 금수강산"이 자주 사용되는 것도 이런 특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화려함을 상징하는 산이 대부분 북한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그 화려함을 체험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
어떤 산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산을 평가하는 것은 주제넘고 불경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가 올라본 산 중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우리나라(남한) 산은 지리산과 설악산이다. 높이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고(해발 1950m), 3대 계곡 중 하나인 탐라계곡을 품고 있는 한라산도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라산은 용암이 분출되어 생긴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기에 밋밋하고 단조롭다. 이러한 특징은 일본의 후지산이나 아직까지도 연기를 내뿜고 있는 하와이의 킬라우에아 화산처럼 용암이 흘러내려 생긴 산들이 가진 일반적인 특징이다. 3대 계곡 중 나머지는 지리산(최고봉 천왕봉, 해발 1915m)의 칠선계곡과 설악산(최고봉 대청봉, 해발 1708m)의 천불동 계곡으로 모두 산의 높이로 따져 우리나라의 3대 고산지역에 존재해 있는데, 이는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다는 옛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리산의 가장 큰 특징은 웅장 혹은 장엄함에 있다. 서산대사는 지리산과 금강산, 묘향산 세 산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秀而不壯 :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고
壯而不秀 :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壯而亦秀 : 묘향산은 장엄하고 수려하다
조선 팔도의 유명한 산을 다 둘러본 서산대사가 이렇게 평가할 정도라면 지리산의 장엄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리산의 장엄함을 느끼려면 산 속이나 산 근처가 아닌, 다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기온이 급강하하여 공기 중의 수분이 서리로 얼어 떨어지면 가시거리가 길어지는데, 이때 50~7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지리산을 바라보아야 이 산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기회는 일 년 중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사람들이 지리산의 장엄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이런 장엄함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주능선은 맨 왼쪽인 서쪽의 노고단으로부터 반야봉, 토끼봉, 칠선봉, 촛대봉 등을 거쳐 맨 오른쪽의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만도 42km이며 1500m 이상의 봉우리만 16개를 품고 있다. 동, 서쪽 능선 아래 지리산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계산하면 이 산은 50~60km에 이르는 거대한 장벽처럼 생긴 하나의 산맥이다. 이 산맥은 서쪽부터 점차 고도를 높인 다음, 천왕봉에서 절정을 이룬 후 다시 점차 낮아진다.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산이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이유는 원시림 등 잘 보존된 생태계, 다양한 종(種)의 동, 식물들, 오염되지 않은 물이나 토양 등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그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이 남성적이고 장엄한 산인데 비해, 설악산은 여성적이고 화려한 산이다. 물론 금강산이나 묘향산만큼 화려하지는 못하겠지만, 남쪽의 산 중에서는 제일 화려한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려한 산은 금강산이나 중국의 황산처럼 기암괴석 등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설악산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산들의 화려함을 감상하려면 지리산의 경우와 반대로 산 속이나 산 가까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설악산의 화려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희운각 대피소에서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이다. 이 능선을 따라가면 설악산의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놓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가을철 공룡능선은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져,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비경을 선사한다. 지리산의 주능선을 종주할 때는 주변의 풍경이 그리 화려하지 않아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따라 걸을 때는 주위의 풍경에 취에 지루한 줄도 모를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면 거기에 대한 대가가 필요하다. 공룡능선은 그야말로 공룡의 등지느러미처럼 높은 산이 여러 개가 연속해서 이어지는 능선을 말한다. 따라서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는 여남은 개의 산을 등산, 하산하면서 계속 나아가야 하는 고난의 행군과도 같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서글퍼지는 것 중의 하나는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에든 도전이 가능한 젊음이 좋다고 하는가 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중산리로 이어지는 지리산 종주나 오색에서 대청봉, 희운각 대피소, 공룡능선을 거쳐 외설악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종주를 예전처럼 하루 만에 끝내는 것은 이젠 불가능하다.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등산을 그만둔 지도 오래된 지금, 이제는 지리산이나 설악산 종주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가듯, 대피소에서 숙박을 하면서 하루, 아니면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지리산의 장엄함이나 설악산의 화려함을 감상하면 되지 않는가?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가치 있고 보람차게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해보기도 전에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리면 그 사람의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