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어져 가는 감각

by 여송

아침 기온이 한 자리 숫자로 곤두박질치더니 주위의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저녁에는 집 앞 텃밭의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더욱더 처량하게 들린다. 요놈들은 예전에는 쇠죽 끓이는 가마솥 주변이나 사랑방 돗자리 밑에서 인간들과 함께 따뜻하게 겨울을 보냈건만 요즈음은 주위 환경의 변화로 인해 허허벌판에서 맨몸으로 겨울을 나야하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수확의 계절답게 건너편 배나무 과수원에서는 어린아이 머리만 한 배들이 봉지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배는 신고라는 만생종 품종으로 늦가을 서리를 맞힌 후 수확하여야 과육이 연해지고 당도가 높아진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과수 농가에서는 수요가 많은 추석 무렵 이 배를 수확하여 시장에 내다 판다.


이웃집 담장에는 석류가 붉게 물들었다. 이 과일은 외모는 화려하고 탐스러우나, 그 맛은 상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이란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 요아킨 계곡(San Joaquin Valley)와 같은 사막 지역에서 나는 석류는 단맛이 강하고 신맛은 별로 없으나, 우리나라 것은 신맛 외의 다른 맛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이 과일은 "석류같이 붉은 입술"이라든지 "석류알같이 조그맣고 가지런한 치아" 등 미인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된다.


산 아래 골짜기에 외로이 서 있던 외딴집들은 대부분 주인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폐가로 전락하였고, 집 주위에 서 있는 주인 잃은 감나무 위에는 감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그중 말랑말랑한 홍시를 하나 따서, 두 쪽으로 쪼갠 다음 입 속으로 넣었다. 혀끝으로 느끼는 달달한 맛, 그러나 무언가 부족하고 어딘지 모르게 입 속이 허전하다는 느낌은 주위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일까?

가을이 깊어 가면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간식거리는 말랑말랑한 홍시였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홍시의 재료인 감은 심폐(心肺)를 눅여주며, 갈증을 멈추고 폐위(肺痿)와 심열(心熱)을 치료해 준다. 또 식욕이 나게 하고 술독과 열독을 풀어주며,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고, 토혈(吐血)을 멎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감은 또한 비타민 C가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이며 영양가도 높다. 감에는 타닌산이 들어 있어 설사와 배탈을 멎게 하며 지혈작용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감의 타닌 성분이 지방질과 작용하여 변을 굳게 하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릴 수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 보따리를 팽개치고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었다. 다행히 집에는 60년 정도 자란 커다란 감나무가 있어 충분한 간식거리를 제공하였는데, 이런 행동은 고등학교까지 계속되어 출출하다 싶으면 한밤중에도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찾곤 했었다. 밤중에는 홍시와 덜 익어 떪은 감을 구별하기가 어려워 감을 일일이 만져보고 물렁한 홍시만 골라 따야만 하는 불편함이 따랐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희생은 기꺼이 감수하곤 했다.

홍시가 가을의 군것질거리라면 초여름의 주된 먹거리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였다. 오디는 당뇨병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고,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보라색의 열매로 노화방지에 좋아 최근에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오디를 영어로 mulberry라 하는데 blueberry 등 berry 단어가 붙은 열매들이 동, 서양을 막론하고 건강에 좋다고 인식되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burberry도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바바리코트가 음식은 아니니까.


예전에는 오디의 효능은 알 수도 없었고, 단지 배고픔을 달래주는 간식의 하나로 취급받았을 따름이다. 나의 건강을 유지시켜 준 요인 중 하나가 홍시나 오디 같은 자연산 건강식품을 많이 섭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뽕나무에 올라가 허겁지겁 오디를 따먹다 보면 열매에 붙은 노린재까지 입속에 털어 넣어 기겁한 적도 있고, 나뭇가지가 부러져 땅바닥에 처박히기도 했다.


당시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배고팠던 시절이라 그런지 이러한 간식거리가 달콤하면서도 감미로운 깊은 맛이 있었고, 따라서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엊그제 맛본 외딴집의 홍시나 몇 달 전 고향 언덕에서 먹어본 오디의 맛 모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예전의 맛이 아니라서 적잖이 실망했다. 예전의 홍시나 오디 맛이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구수한 된장찌개 맛이라고 하면, 최근에 먹어본 이들의 맛은 기차나 버스역 앞에서 뜨내기손님을 상대로 조미료나 양념으로 맛을 낸 설렁탕이나 해장국 맛이라고나 할까?


오디나 홍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이러한 맛의 변화를 가져온 요인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음식 그 자체의 맛이 변한 경우이다. 홍시나 오디의 맛이 예전과 달라진 것이 기후의 변화, 환경오염 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일조량이 줄어들었거나 수질이나 대기오염 등으로 식물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여 과일이나 열매의 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일이나 식재료가 포함하고 있는 당분 등 성분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미각의 변화했을 가능성이다. 음식 맛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입맛이 세월에 따라 변하여 예전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날 자극적인 조미료와 강렬한 향신료 등으로 무장한 음식들은 우리의 혀를 마비시켜 미각에 둔감해지고 있다. 매울수록 맛이 좋은 양 불닭, 불라면 등이 인기를 끌고 있고, 여러 가지 양념으로 버무린 볶음요리나 찜 요리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식탁에는 구수한 숭늉 대신 자극적인 카페인으로 무장한 커피가 등장한 지 오래되었고, 어린아이들은 전통음료인 식혜 대신 콜라나 사이다를 더 좋아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설탕 사용량이 급증하여, 우리의 미각세포는 어지간한 단맛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홍시나 오디의 옛 맛을 느끼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이러한 입맛의 변화라고 생각된다.


어디 미각뿐이랴. 밤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이나 화려한 불꽃쇼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시신경을 점차 마비시키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기거나 진 대가로 자신의 시력을 상대방에게 헌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속에서, 심지어 길거리 걸을 때나 친구 만날 때조차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시력은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언젠가는 심해어처럼 인간의 눈도 퇴화되어 얼굴 위의 한 점으로 남지 않을지 걱정이다.


현대인은 또한 끊임없는 소음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집을 나서자마자 쏟아지는 자동차의 경적이나 엔진 소음,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에 우리의 귀 역시 피로감에 지쳐 있다. 최근 들어 난청환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한 원인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어폰 속에서 강력하게 울려 퍼지는 헤비메탈의 음악은 젊은이들의 청각을 둔감하게 하고 있다.


이러다간 둔감해진 미각으로 인해 싱싱하고 향긋한 봄나물의 맛을 모르고, 약해진 시력으로 인해 한여름 무지개의 찬란한 빛을 느낄 수 없거나, 청각의 마비로 가을밤의 아름다운 귀뚜라미 선율을 들을 수 없게 되는 불행한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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