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최고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벌써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무더위에 개들도 지쳤는지 슬리퍼처럼 생긴 혓바닥을 내밀고 헐떡거리면서,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짖지도 않고 귀찮은 듯 외면해 버린다. 닭들 역시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체온 조절하느라 그야말로 진땀을 흘린다. 개나 닭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어 입 속의 침을 증발시켜 기화열을 발산시키는 방법으로 여름날 체온을 낮춘다. 만약 사람이 닭처럼 침낭 재료로 쓰일 정도로 보온 효과가 뛰어난 닭털로 피부가 덮여 있다고 가정할 경우, 이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겨울이 되면 상황은 정반대로 된다. 이들 동물들은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강추위 속에서 홑이불 한 장 없이 생존해 나갈 수 있다.
집 앞 텃밭의 농작물들도 더위에 지쳐 헉헉거린다. 들깻잎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기운 없이 축 늘어졌다. 그래도 이 작물은 아침이 되면 다시 팔팔해진다. 참깨나 들깨는 가뭄에 매우 강해서 어지간한 더위에도 잘 견딘다. 반면, 습기에는 약해 장마가 오래 지속되거나 흐린 날로 일조량이 줄어들면 결실이 좋지 못하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들깨나 참깨 같은 깨 작물에 특히 어울리는 속담이다. 집 뒤편에 심은 호박은 줄기가 많이 뻗어 마당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달구어진 콘크리트 바닥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찜통 속에서도 호박잎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낮의 열기 속에서 새들도 지쳤는지 그 모습을 볼 수도, 지저귀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모두들 집 뒤편 대나무 숲 속에서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집 뒤편, 느티나무 위에서는 제철 만난 듯이 울어대던 매미들도 뜨거운 열기에 항복했는지 조용하다. 한여름의 무더위로 모든 생명체들이 납작 엎드려 있어 농촌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시커먼 아스팔트로 포장된, 한적한 도로 위에는 달구어진 노면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따뜻한 봄날, 양지바른 언덕에서 솟아오르는 아지랑이의 동작은 부드럽고 유연한 반면, 한여름의 아지랑이는 너무 현란하고 격렬해서 잠시만 보고 있어도 현기증이 난다.
덥다고 난리지만 여름철 태양처럼 고마운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햇빛은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 광합성이란 엽록소를 가진 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녹말이나 포도당을 만드는 작용이다. 광합성은 양분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동물들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 낸다. 이런 점에서 햇빛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이런 사실을 상기하면 여름철 뜨거운 태양으로 좀 덥기로서니 불평할 수도 없다. 미국의 심장전문의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et)은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로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받아들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 무더위는 피할 수도 없고, 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싶다.
광합성 작용은 빛의 세기가 셀수록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여름철 일조량이 높을수록 곡식이나 과일의 열매가 굵어지고 당도도 높아진다. 깨나 호박, 콩, 땅콩 등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가 가을철 풍작을 위해서라면 이까짓 더위쯤이야! 조용하고 한적해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텃밭의 깻잎이나 호박잎의 엽록소라는 공장 속에서는 뜨거운 햇빛이라는 조명 아래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투입하여 열심히 탄수화물을 만들고, 그 부산물로 우리에게 소중한 산소를 방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저녁뉴스 시간에는 들에서 일하던 노인들이 폭염에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그럴 때면 가끔 나에게 시골서 무리하게 일하지 말라는 걱정스러운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촌집 안의 몇 평 되지도 않은 텃밭 가꾸는 것도 일이라고 하나 싶어 입가에 웃음이 생기지만, 그보다도 벌써 내가 일하다 쓰러질 정도의 노인이 되었나 하는 서글픔이 앞선다.
금년 여름은 기상학적으로 여느 해와는 다른 특징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초여름인 6월에는 가뭄으로 온 나라가 난리 더니, 느지막이 장마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이 한반도 쪽으로 두 개나 올라와 장마전선을 밀어 올리는 바람에 장마가 싱겁게 끝났다. 태풍은 보통 8, 9월에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올해는 7월에 2개나 한반도 근처를 지나 기압배치를 흩트려 놓았다.
장마 같지도 않은 장마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말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하긴 아직 입추나 말복도 지나가지 않았으니, 계절상 지금이 가장 더운 시기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한갓 미물(微物)에 지나지 않는다. 한여름의 더위도 우주의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법칙의 일부분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제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 자연의 위대함을 수긍하고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자연을 거스르는 대가는 언제든지 혹독하다. 최근, 여러 자료들에서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기에도 예전에 비해 겨울은 짧아지면서 따뜻해지고, 여름은 길어지고 더워지는 것 같다. 이러다간 지구 상에 사막화가 가속되어 농작물 작황이 급속도로 나빠질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온난화의 주범이 이산화탄소의 과대 배출이라 하니, 이 모두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인간이란 나약하고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간사스러운 게, 장마철에는 햇빛 좀 났으면 했다가 막상 햇볕이 나서 날씨가 더워지면 비가 좀 왔으면 한다. 그러나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 여름다워야 한다. 그래야만 가을철의 풍년을 기대할 수 있다.
옛날에는 날씨가 더워도 더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조상들은 더위는 피하는(避暑) 것이 상책이라고 하면서, 느티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거나 시원한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요즘은 곳곳에 냉방시설이 있어 더운 여름을 보내는 것이 한결 편하게 되었다. 시골에는 마을의 경로당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 대부분이 노인들인 주민들이 이곳에서 화투도 치고 점심도 같이 지어먹으면서 즐겁게 여름을 보내고 있다. 또한 공공도서관에 가면 아침부터 냉방시설이 가동되어 종일 거기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다른 계절보다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피서 형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와, 예전에는 여름철이면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산이나 계곡에도 피서객이 넘치곤 했다. 특히 청소년들은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산을 주로 찾아 등산과 캠핑 등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곤 했다. 요즘 피서철에는 대도시의 호텔이나 대형 위락시설,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도시 근교의 해수욕장만 붐빌 뿐, 산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청소년의 체력이나 인내력 저하를 가져오는 요인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어서 조만간 다가올 입추가 지나면 다시 기온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남은 여름 동안 햇볕도 쨍쨍 내리쬐고 가끔 비도 내려 농작물이라도 잘 자라, 늘어진 개처럼 꿈적도 않는 경기를 부양시키는 견인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복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또한 불경기나 가뭄으로 풀이 죽은 백성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꽃으로 활활 타올라 그들로 하여금 활기차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생활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