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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Jul 08. 2017

시골집


  내 기억 속의 시골집은 우선 지붕이 이엉으로 이은 초가집이다. 지붕 끝, 추녀 속에는 참새가 집을 지어 수시로 들락거려야 어울린다. 그 지붕 뒤로 솟은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으면 제멋이 난다.


  집 주위에는 돌과 흙으로 차례차례 쌓은 나지막한 담장이 드리워져 있고, 그 담장 위로 봄에는 개나리, 여름에는 무궁화, 가을에는 박넝쿨이 기어 올라가 있되, 날카로운 쇠창살이나 사금파리는 없어야 한다.


  담장 밑, 양지바른 화단에는 채송화와 봉숭아 등이 심겨 있어야 하고, 장미나 튤립 등이 자리해서는 안된다. 들국화나 맨드라미 정도는 괜찮다. 가끔 민들레 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기도 해야 분위기에 맞다.

 

  집 입구에는 집주인이 마실 갈 때 가끔 대나무 막대기가 걸쳐져 있는 경우는 있으나, 대문은 없어야 한다. 때로는 대나무 막대기 대신 지겟작대기가 걸쳐 있기도 하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어미닭과 병아리들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사납게 생긴 수탉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마당 한쪽에는 감나무가 높이 솟아 까치가 둥지를 틀고 아침저녁으로 깍깍 울어대야 하며, 그 반대쪽에는 석류나무, 그 밑에는 장독대가 자리 잡아야 구도가 맞다. 장독대 위에는 새벽마다 집주인이 자식 잘되기를 기원할 때 사용되는, 정화수가 담긴 하얀 사발이 놓여 있어야 한다. 마당 구석에는 우물이 자리 잡고, 그 위로 두레박이 걸쳐 있어야 격에 맞다. 우물 속에는 파란 하늘이 들여다보이고, 쌓아 올린 돌에는 파란 이끼가 잔뜩 끼여 있으면 멋이 있다.

 

 

  집 뒤 텃밭에는 계절별로 쪽파나 상추, 고추가 심겨 있고, 풀은 말끔히 매어져 있어야 한다. 때로는 이웃집 멍멍이가 여기로 와서 볼일을 보고 가기도 한다. 아침, 저녁으로 참새 떼들이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텃밭에 내려앉아야 하며, 가끔 병아리 식구들이 이곳으로 놀러 와서 푸성귀를 쪼아대야 어울린다.



   아래채 외양간에는 누렁이가 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고, 그 왼쪽에는 쇠죽을 끓이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어야 분위기에 맞다. 명절 때에는 집주인의 손자들이 가마솥 바닥에 널빤지를 깔고 목욕을 해야 더욱더 시골집 분위기가 살아난다. 가을철에는 가마솥 주위에 귀뚜라미들이 모여서 곁불을 쬐면 운치가 있다.

 

  외양간 오른쪽에는 퇴비를 모아두는 헛간이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는 퇴비가 발효하면서 내는 냄새로 진동해야 하는데, 이 냄새는 주인에게는 향기롭게 다가와야 시골 정서에 맞다. 헛간 맨 앞쪽 바닥에는 재 거름이 쌓여 있어야 하며, 위로는 지난가을 철에 엮은 시래기 다발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걸려 있어야 시골집의 정취가 살아난다. 장마철엔 그 헛간에서 손바닥만 한 두꺼비가 한 마리 기어 나오면 더욱 좋다.


  시골집의 벽은 황토로 이루어져 있고, 군데군데 볏짚을 썰어 만든 여물이 삐져나와 있어야 한다. 황토 일부가 떨어져 나가 대나무로 엮은 뼈대가 드러나 보이면 분위기가 살아난다. 벽면 아래쪽 곳곳에는 구멍이라도 뚫려, 그 구멍 속으로 생쥐들이 들락거리면 더욱 정겹다.

 

  늦은 봄, 시골집의 처마 밑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어야 하고, 여름에는 삶은 보리쌀을 담은 대바구니가, 가을철에는 분홍빛 곶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야 한다. 처마 밑 서까래는 굽은 소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어야 하고, 검게 그을려 있으면 더욱 운치가 있다.

 

  부엌문은 널빤지로 된 여닫이문이어야 하고,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병아리 가족들이 가끔 열린 부엌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뒤지다가 집주인에게 혼날 수 있다. 부엌 속의 솥은 큼지막한 무쇠솥으로 반질반질 윤기가 나야하며, 그 옆의 부뚜막은 고운 황토로 채색되어 있어야 한다. 솥뚜껑을 열면 얄팍하게 고인 물에 보리밥 한 양푼이가 놓여 있어야 이치에 맞다. 부뚜막 위, 무쇠솥 옆에는 식초가 익어가는 목이 좁은 초병(醋甁)이 놓여 있어야 제격이다. 무쇠솥 아래 아궁이에는 항상 재가 수북이 쌓여 있고, 불씨가 살아있어야 분위기가 산다.

 

  부엌 속, 아궁이 맞은편에는 대나무로 엮은 실겅이 두 나무기둥을 의지하여 걸려 있고, 그 위에는 윤기 나는 뚝배기와 찌그러진 양푼이가 엎어져 있어야 격조에 맞다. 실겅 옆에는 보릿대가 잔뜩 쌓여 있어야 하는데, 겨울철에는 마른 솔잎과 솔가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해야 한다.

 

  축담 위, 마루 아래에는 잘 다듬어진 섬돌이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는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한다. 마루는 널찍한 송판으로 깔려 있고 거무튀튀한 때가 끼어 윤이 나야한다. 그래야만 일하고 난 뒤 발에 흙 묻은 채로 마루 위로 올라서도 별 부담이 없다. 마루 바닥에는 군데군데 옹이가 빠져 구멍이 뚫려 있으면 좋다. 가끔  이 마루 구멍을 통해 손자들이 동전을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해야 이치에 맞다. 마루 밑에는 지난가을에 딴 호박이 뒹굴어야 하고, 그 사이로 고양이들이 들락거리면 효과 만점이다. 저녁 무렵,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지필 때면 마루 밑에서 하얀 연기가,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처럼 새어 나와야 시골집 분위기에 어울린다.

 

  방문은 격자무늬로 된 창살로 이루어진, 나무로 만든 재래식 문이어야 제격이고, 그 문살에는 한지로 도배되어 있어야 한다. 문고리는 시커멓고 동그란 무쇠 고리여야 격조가 있다. 방문 군데군데 구멍이라도 뚫려 있으면 금상첨화다. 방바닥은 종이로 된 장판에 들기름을 듬뿍 발라 기름기가 배어 있어야 어울리며, 아랫목은 아궁이로부터의 열기로 인해 검은 빛깔로 채색되어 있어야 한다. 벽은 신문지나 달력을 찢은 종이로 도배되어 있고 누렇게 색이 바래 있어야만 조화롭다. 이불은 헤진 곳에 헝겊을 덧댄 누더기 이불로, 장롱으로 쓰이는 낡은 궤짝 위에 가지런히 개어 포개어져 있어야만 한다.


  

   시골집의 집주인은 반백 머리를 곱게 빗어 나무 비녀로 쪽진,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라야 격에 맞고, 이빨이 빠져 볼이 오목 거리면 더할 나위 없다. 얼굴은 주름살 투성이 이고 광대뼈가 튀어 나면 더욱더 좋다. 피부는 거칠고 윤기가 없어야 하며,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어 있으면 더 잘 어울린다.

 



  무더운 여름, 시골집 주인 할머니는 텃밭의 김을 매고 굽은 허리를 힘들게 일으킨 다음, 광 속에서 싸라기를 한 대접 가지고 나와 어미닭과 병아리에게 뿌려준다. 그리고는 곧장 외양간으로 가서 가마솥의 쇠죽을 한통 가득히 퍼서 누워서 졸고 있는 누렁이 앞 여물통에 부어준다. 할머니의 수수깡처럼 마른 손이 소의 등을 쓰다듬자, 소는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쇠죽을 먹기 시작한다.

 

  이윽고 할머니는 무거운 노구를 이끌고 뒤편 텃밭으로 가서 풋고추 몇 개와 상추 한 움큼을 따온다. 집주인은 허리가 꼬부라진 채, 우물가로 가서는 힘겹게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양푼이에 붓는다. 한여름인데도 우물물은 이가 시리도록 차갑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식은 밥과 냉수, 풋고추와 상추, 그리고 열무김치를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개다리소반에 차린 다음, 마루에 걸터앉아 느지막한 점심을 든다. 할머니는 이빨이 없어 식사를 우물거리면서도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가끔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뒷산의 뻐꾸기 울음소리가 한낮의 고요함을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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