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비포·애프터 너머, 정리 속 숨겨진 이야기

by 지혜



왜 나는 비포·애프터 사진이 불편했을까?



여러 사람이 어지럽혀진 집 사진을 보며

안도와 동시에 자조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장면이 마음에 걸렸다.

왜 정리는 늘 그렇게 소비될까.




정리는 내면 공부보다 훨씬 실재적인 방식으로

나를 알게 해 준다.

물건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나를 알아가는 여정을 걷는다.

그 과정에서 특히,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집이라는 공간만 봐도, 그 패턴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기록판이다.



정리의 지혜



한 사람이 식탁 정리가 숙원사업이라고 했다.

그 위에는 꽃과 쇼핑백, 와인이 놓여 있었고

아직 뜯지 못한 여행 기념품도 보였다.


처방받고 먹다 남은 약봉지와 연고,

여기저기 흩어진 대일밴드도 함께 있었다.


배달 후 남은 수저와 젓가락,

핸드크림과 팩트 등.


이 물건들을 한꺼번에 보고 있으니

어질러진 공간이라기보다

여러 장면을 담은 필름처럼 느껴졌다.


축하와 여행의 여운,

몸을 돌봐야 했던 시간,

하루를 버티느라 선택한 방식들.


물건의 흐름을 보면

‘왜 치우지 않았을까’보다,

‘어떤 사람일까’에 관심이 간다.



결국 내가 비포·애프터 사진 앞에서

불편했던 이유도 사람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의 지혜



최근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화려한 요리 자체보다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정리도 그렇다.

물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깨끗한 '애프터'보다,

어지러운 '비포' 속에 놓인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물건을 통해 나의 습관과 취향,

그리고 애써 외면했던 감정까지 알아가는 과정은

앞으로의 삶에서 막강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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