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리 14화

살아난 유리 조각 #14

by Cruel Ella

유리는 음식을 한가득 숟가락에 얹더니 한 입에 넣어 버린다. 작은 얼굴에 다람쥐처럼 볼주머니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오물오물 씹어대는 표정에 영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녀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영진의 심장박동수는 지금 평균보다 훨씬 웃돌아 있다.


"거 좀 천천히 먹어."


"마음 놓고 음식 맛을 느껴본 게 오랜만이란 말이야."


"그렇다고 족발이라니, 메뉴 선정이 너무 과한 거 아냐?"


"막국수 때문에 시킨 거야. 난 족발보다 딸려오는 막국수가 더 좋아."


"그래서 대자 시켰냐?"


"그럼 막국수를 더 많이 주는 거 아닐까?"


"참나, 그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안심이 되니까 나오네, 그런 발상이."


둘은 눈을 마주치고 아무 말이 없다. 둘 다 잊고 있던 현실이 다시 생각난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정신과 약을 달고 살았던 유리였다. 바닷가를 헤매며 그녀를 찾아 음악을 만들던 영진이었다. 서로 통성명 한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다. 깊은 밤, 둘은 도망치듯 바닷가 마을을 떠나왔고 쏟아지는 비를 같이 맞으며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었다. 영진은 유리 때문에 번호판을 갈아 끼우는 불법을 저지르고, 유리는 괴한에게 잡혀갈 뻔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삼일 동안 일어났는데 두 남녀는 웃으며 음식을 먹고 안심하고 웃을 수 있는 아지트가 생겼다. 그리고, 이 둘에게서는 생각지 못한 감정선이 만들어졌다.


"배불러, 나 작업해야 하니까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자든가."


영진이 먼저 일어난다. 더 이상 마주 보고 앉아있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유리가 오해를 해도 어쩔 수 없다. 영진이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인내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영진이 일어서니 의자가 뒤로 밀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부드러운 공기와 감정선을 부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 스물여덟."


유리는 영진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할머니 집에서도 유리는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의 행동을 단번에 멈추게 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타이레놀을 손에 쥔 영진의 자세를 부동으로 만들었었다. 영진은 또 한 번 일어선 채로 굳는다.


"남편과 사별했고, 보시다시피 인생이 조금 피곤해."


이건 또 무슨 고백인가. 영진은 겨우 눌러놓았던 감정이 요동친다.


"사별한 지... 1년... 조금 더 됐지. 가진건 쥐뿔도 없고."


유리는 씹고 있던 음식을 동치미로 꿀꺽 넘기더니 영진을 향해 고개를 든다.


"이런 나라도 괜찮아?"


유리와 영진의 눈이 마주친다. 오랫동안 그리고 간절히.




"어디래요?"


"곧 집으로 올 거 같아. 정면승부를 보겠지. 경찰서에 갔었으니 사건 마무리된 걸 확인했을 거야. 조금 기다려 봅시다. 그 애도 바보가 아닌 이상 밖에 오래 있진 못할 거요."


"우선 운전기사부터 찾아요. 아무래도 불안해요."


"이미 손 써뒀어. 물으려 해도 물을 곳이 없어졌으니 괜찮을 거요."


"당신 딸이라고 해서 봐주는 거 없어요. 이미 그 애는 내 손에 넘어온 아이니까."


"..."


"마음 약해지지 말고. 유리를 빨리 내 앞에 데려다 놔요."


"며칠만 더 기다려 봅시다."


"많이 못 기다려요. 알잖아, 당신도?"


"이미 많이 망가진 아이요! 이제 그만 내버려 둘 때도 되지 않았나?"


"이쁘게만 있으면 돼요. 많은 거 바라지 않아요. 이 서방하고 같이 살 때 그냥 끌고 들어왔어야 하는 건데! 체면 차리다가 어영부영 일이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그때 당신 마음 약해져서 내버려 두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미리 손을 봤을 거란 말이에요. 나도 바보 같았지! 그 말에 마음이 약해져서 내버려 뒀더니 1년이고 2년이고 세월만 지나가서는!"


"그 둘은 겨우 2년 살았소. 나름 행복하게 잘 지냈었단 말이요!"


"그게 뭐 잘 사는 거라고 둘이 히죽히죽! 그 꼴을 내가 2년이나 봐준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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