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리 13화

살아난 유리 조각 #13

by Cruel Ella

저녁 5시. 서울 관악구 한 오피스텔.


6자리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영진의 손이 약간 떨린다. 등 뒤에 유리를 두고 영진은 수만 가지 생각을 해치우고 있다. 우선 데려오긴 했는데 이곳에서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계획된 바가 없다. 우선 유리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편하고 안전하게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공간이 영진의 서울 집이다. 영진은 근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집을 비우긴 했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왔었다. 일 처리함에 있어서도 그렇고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영진은 나름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있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태껏 생활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영진의 집은 3층짜리 고급 빌라로 맨 꼭대기 층을 사용하는 영진의 집만 복층 구조다. 1층은 음악 작업실로 꾸며져 있고, 복층에는 영진의 침실과 손님을 위한 여유 방이 2개나 있다. 채도가 짙은 깨끗한 인테리어에 음악 작업을 위한 고가 장비들이 있어 관리가 쉽지 않겠다 생각이 든다. 유리는 영진의 또 다른 면을 보고 놀란다. 그저 기타 들고 노래하는 방랑자 같은 이미지였던 영진이 이런 공간을 소유한 나름의 전문가적인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에는 그저 음악 지망생 같은 꿈 많은 청년의 이미지였는데 그는 나름대로 그의 삶을 잘 구축해 놓은 남자였다.


"몇 살이야?"


유리는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예고되지 않은 질문을 받은 영진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듯 뒤돌아 유리를 바라보더니 얼굴의 근육을 펴 보인다.


"그걸 이제 물어봐?"


"집 꼴을 보니 가난한 집 아들은 아니네."


"나름 이쪽 시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몇 살인데?"


집요하다고 느낄 정도의 질문이다.


"서른둘."


"뭐? 오빠였어?"


"확실히 내가 너보다 어려 보이긴 하지."


"치~"


삐죽 입술을 내미는 유리를 보자 영진은 고개를 확 돌려버린다. 방심하는 찰나, 유리는 계속 영진을 유혹한다. 아니다. 어쩌면 영진이 고의적으로 유혹을 당하고 있는 것일 수도.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왼쪽 방을 쓰면 돼. 가운데 화장실이 있으니까 헷갈리지 말고. 내 방은 계단 오른쪽이야."


"넌 뭐할 건데?"


"작업 마무리할 것도 많고, 저녁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도울 건?"


"없어."


"없어?"


"응!"


"아무것도?"


"응!"


"저녁은 뭐 먹을 건데?"


"배달시켜야지. 집에 장 봐 둔 게 없어."


"그럼 메뉴는 내가 고르면 되겠네. 내가 해야 할 일!"


"그러든가."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흐른 뒤, 유리는 망설임 없이 영진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배달앱을 켠다. 메뉴를 고르고 배달을 시키기까지 주소를 묻는 것 외에는 영진에게 말을 시키지 않는다. 나름 신중히 메뉴를 선택하고 싶어졌다. 영진이 먹어도, 내가 먹어도 어색하지 않을 그 무엇. 음식이란 것은 같이 나누면 나눌수록 정이 붙는 건데 영진과의 식사가 연달아 3일째다. 유리도 지금 영진과 함께 있는 이 공간과 시간이 편치만은 않다. 앞으로 해야 할 숙제 같은 일들이 태산인데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복잡해져 단순하고 심플하게 영진을 대하고 있다. 감정에 휘말리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영진의 기분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 죽음 뒤에 많은 비밀이 숨겨 있을 텐데 순간순간 유리는 그걸 잊는다.


영진의 오피스텔 앞.


두 괴한은 한 차에 같이 타 있는 채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네! 그 남자 집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한 괴한은 운전대를 잡은 동료에게 말한다.


"철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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