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나요 #15

다가서기

by Cruel Ella

금요일 저녁, 퇴근하기 전에 유 반장님께 이력서와 사진, 통장 사본이 담긴 봉투를 내민다.


"그려~ 잘 생각혔어. 내가 홍 실장한테 말해 놨응께 조만간 연락이 올겨~"


아르바이트에서 정직원.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잘못된 선택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진하기로 했으나 여전히 지윤이가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든 우리 사이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젯밤, 서류를 준비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모른 체하며 지낼까도 생각했었지만 나는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다. 제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이 회사에, 유 반장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에 진심을 담는다. 너무 앞서지 않고, 주어진 기회와 환경에 차근차근 반응하면서 살다 보면 뒤쳐지진 않겠지. 그 사건 이후 짧게 근무하며 여러 회사를 전전했지만 여기서는 묵묵히 일하며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서 여기까지 왔다. 나 자신이 기특하다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무척 흐뭇해하셨을 것이다.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


물류 창고를 나와 걷는다. 지윤이의 퇴근 시간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남았다. 집에 다녀오기엔 시간이 애매해서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땀 냄새 때문에 실내에서 식사하지 않고 포장해서 공원으로 가지고 나온다. 이미 내게는 익숙한 동선이다.






어둑해질 즈음, 회사에서 나오는 지윤이가 보인다. 그 뒷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같이 걷는다. 버스를 탈 지 지하철로 들어갈지 모르지만 우선 가까이 가지 않기로 한다. 오늘 놓치게 되더라도 괜찮다. 급한 마음에 달려들었다가 도망가버리면 나의 결단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아까 내가 들렀던 편의점으로 지윤이가 들어간다. 익숙한 듯 막걸리 한 병을 집는다. 지윤이는 막걸리를 마시지 않는다. 그녀의 선택은 항상 맥주였는데 분명 막걸리를 집어 들었다. 편의점 실내에서 음식을 안 먹은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시간 텀이 있지만 분명 남아있었을 내 땀냄새는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이다.


편의점을 나오는 그녀 뒤를 한동안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한다. 15년 만에 불러보는 그 이름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막상 입 밖으로 부르려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배에 힘을 줘본다. 아까 먹은 편의점 음식들이 나의 근육을 움직여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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