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사랑 #1

by Cruel Ella

기록된 적이 없는 기억으로 또 한 번의 고통을 겪는다.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장면을 기억해내는 작업은 매번 고통을 동반하면서도 해내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머리를 쥐어짜 본다.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은지의 이런 모습을 어느 누구 하나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만 은지는 누군가가 봐주었으면 작은 위로라도 될 것이라 장담한다. 그러나 보일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그저 감내하고 살아가는 서른다섯의 인생이라고, 내쳐질 때부터 그랬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고, 누군가 쥐어준 티켓이 잘못 전달된 거라고 믿고 싶을 만큼 원천적인 원망의 상대를 찾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왔다.


오늘도 역시 은지의 엄마는 자기 딸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며 소리를 질렀다. 찾아갈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에 내성이 생길 만도 한데, 나약한 인간에게는 감정이라는 쓸데없는 옵션에 괴로워하는 몫마저 욕 받는 사람에게 무게가 얹힌다. 불공평하다. 요양원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은지고, 매주 찾아와 엄마의 상태를 봐주는 것도 은지고, 필요한 물품을 사다 나르며 목욕이라도 시켜주는 것이 은지뿐인데도 엄마는 여전히 은지에게 원망의 욕을 퍼부어댄다.


녹초가 되어 나오는 은지를 반기는 것은 동생 혜지였다. 혜지는 결코 엄마 얼굴을 뵈러 갈 때 동반하지 않는다. 주차장까지만 동행하고 은지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뿐, 결코 요양원 안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은지가 조수석에 오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 시동을 건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 나눌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매번 같은 패턴이다. 이 둘에게는 어떠한 비밀도 없지만 그렇다고 숨기는 것이 없다. 그저 감정을 나누지 않을 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순댓국집으로 향한다. 여기까지 오면 매번 식사를 하러 들르는 곳이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이 이 둘에게는 타인과의 읍식섭취일 뿐, 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자연스럽게 늘 앉던 자리에 착석을 한다. 아직도 은지와 혜지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우걱우걱.


입에 음식을 넣는 둘에게서 느껴지는 공기는 다르다. 혜지의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을 은지가 살짝 잡아준다. 하버 터면 머리카락이 음식과 함께 입에 들어간 뻔했다. 귀찮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낚아채버리는 혜지의 버릇없는 손짓에 은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만 할 뿐,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이상할 만도 한 둘의 관계를 주인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굳이 아는 척하려 하지도 않는다. 똑 닮은 둘에게서는 소개하지 않아도 될만한 판박이 얼굴에 머리카락 길이만 다를 뿐 마른 체격과 백옥 같은 피부마저 닮았다.


쌍둥이.


'하필, 지 애비를 빼다 박은 꼴 보기 싫은 년."


엄마의 잔소리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얼굴, 거울을 보며 상상한다. 은지는 그렇게라도 해본다. 괴롭지만 해보려고 애쓴다. 어디가 닮았는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나 얼굴 전체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아빠랑 닮았다고 하니 머리를 짧게 잘라본 것이다.


"이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