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사랑 #2

by Cruel Ella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아버지의 존재는 지금까지 힌트조차 얻지 못했다. 집에는 남아있는 사진 한 장 없었고 주변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도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존재는 엄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부터 엄마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그저 욕으로.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어떤 상처를 껴안으며 혼자 끙끙 사셨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욕이 줄줄 나온다. 그 작은 입에서, 내 눈에 초점이 박힌 눈빛에서, 거친 손끝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다 보니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더욱 힘껏 쥐어준 운전대에 불안함이 스멀스멀 스며드는 듯하더니 이내 은지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유도 없이 당했던 생채기가 쓰라림으로 느껴질 때마다 조절되지 않는 눈물이 난다. 아물 기회도 없이 자꾸만 덧입혀 상처가 생긴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흐르는 걸 볼 때마다 혜지는 혀를 차댔었다. 분명 지금도 혜지는 날 보며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일 게 뻔하다. 다행히 오늘 차 안에는 은지 혼자다.


오늘 은지는 외곽 카페에 나왔다. 헤어진 전 남자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은 터였다. 무슨 용건인지 묻지 못했다. 은지는 어떤 사랑을 하든 그저 소극적인 상대였을 뿐, 열매로 맺어진 소중한 생명 하나 건지지 못한 불쌍한 여자였다.


"결국 잘랐냐? 그 머리!"


오자마자 거침없이 핀잔을 놓는다. 멋쩍은 듯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은지에게로 또 한 번이 핀잔이 날카롭게 날아든다.


"그런다고 찾아질 것 같아? 니 아버지란 사람!"


이 사람은 주어와 서술어가 늘 바뀌어 있다. 듣기 불편한 말버릇이라 생각이 들지만 한 번도 은지 입으로 거론한 적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은지는 귀에 거슬린다. 이런 핀잔 섞인 말을 할 때는 더더욱. 여전하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이는 은지에게로 불편한 용건이 날아와 귀에 꽂힌다.


"돈 좀 빌려줘, 20만 원."


"없어, 20만 원."


은지는 그 이상한 말투를 따라 보인다. 거절의 멘트에서는 이런 말투가 거슬릴법한 뉘앙스를 풍긴다. 전 남자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이며 은지를 노려본다. 그의 핏기 없는 얼굴에는 담배에 찌들어 늙어버린 거무튀튀한 피부만 도드라져 보인다. 주름 하나하나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이 도박과 여자에 놀아난 40년 인생의 한량이 배어있다. 거기에서 시작되었을까, 그의 뻔뻔함은.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은지는 그동안 그가 달라고만 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돈을 갖다 바쳤었다. 묻지 않아도 알법한 이유지만 한 번도 잔소리 다운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럴 용기가 없는 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의무도 이유도 없는데 전 남자 친구는 여전히 과거의 관계를 현재에 끌어 붙인다.


"20만 원도 없어서 날 또 부른 거야? 그깟 20만 원이 없어?"


"아이, 씨발. 내가 그런 잔소리를 들어야겠어? 너한테까지!"


전 남자 친구의 사회성이 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20만 원이 없어서 전 여자 친구를 소환해내는 능력까지 가관이다. 주변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 창피하지도 않다. 왜 만났을까, 이런 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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