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사랑 #3

by Cruel Ella

"사랑이었을까, 우리?"


"뭔 개소리야, 씨발. 없으면 관둬!"


테이블 위에 있던 커피가 순식간에 쏟아졌다. 그가 차 버린 게 커피였을까, 은지였을까. 직원이 달려와 괜찮냐고 물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은지에게서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물러난다. 위로의 말이든 젖은 옷을 닦아주려는 선행이든 주려는 사람보다 받을 사람이 먼저 거절한 셈이다.


평범하지 않게 살려고 애를 써본 적이 없는 은지다. 오히려 평범함을 꿈꾸며 산다. 혜지 또한 원하던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한 바 없이 주어진 인생이었다. 어떤 이를 닮게 해달라고 기도해본 적도 없고, 나와 똑같이 생긴 형제가 있으리라고는 더욱 기대하지 않았었다. 부모를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이미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부어대는 엄마의 온갖 욕설과 강요는 은지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과연 사랑은 원래 이런 것인 줄 알았던 유년 시절을 지나 거부하고 폭발했던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사랑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에 덮어 씌워져 버린 것(?)들로부터 거절하기를 포기하고 살았다. 그게 16살부터였다.


'받고 싶지 않다, 어떤 것이든.'


은지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 도움? 배려? 뭐든 예의 없게 다가온다. 은지를 존중하며, 은지의 의사를 물어온 적이 없었다. 괜찮겠냐고, 원하냐고 물어봐준 적이 없었다. 대답할 준비는 되어 있는데 물어오질 않으니 대답할 기회가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날 사랑했던가?'

'그게 사랑이었나?'


'혜지는?'

'우린 가족 아니야?'

'그런데 나에게 왜 그래?'


'남자 친구?'

'날 사랑한다며?'

'그게 사랑이었니?'


수많은 물음 속에서 어느 것 하나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은지는 알 것 같은데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물어봐 주기만 하면 되는데 누구도 은지에게 물어보질 않는다. 그래서 은지는 인생이 슬픈 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자기 입장만 생각만 해서, 좋은 일이라고만 하면 따지지 않고 무조건 주는 게 옳은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생긴 오류들 투성이인 세상.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세상. 그 행복을 찾겠다고 애를 쓰면서도 희망의 씨앗은 보기 드문 세상. 엄마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핑계로, 운명 같은 사랑을 주는 거라고 강요하는 이성에게서 받은 그 모든 것을 은지는 진절머리 나게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마저 거절하면 은지 스스로의 존재가 없어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그저 꾸역꾸역 삼켜댔더니, 젠장! 행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커피로 얼룩진 청바지가 진하게 물들었다. 무겁게 젖은 청바지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은 은지의 처량함을 더욱 짙게 만든다. 커트 머리라고 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의 인물은 아니다. 워낙 백옥 같은 피부에 야리야리한 체형으로 영락없는 청순가련형 여자건만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청순함에 반항하듯 검고 어지럽게 덮였다. 카페를 나서는 은지의 발걸음 자국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묻는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선을 보이려 애쓰지만 손끝에 서린 미세한 떨림은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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