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었던 거네.

나만의 '잘'도 '잘'이라서.

by 땅콩

https://youtu.be/AZi7KKDUwxM?si=gXuZVz6-mwlH4FRl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

'잘'이란 부사가 이토록 대단한 단어였다니. 이젠 무서워서 잘 쓰지도 못하겠다.


나른한 밤을 보내고 있던 어제. 가을도 지나갔고, 센치해지는 주간도 아니고, 기분이 좋음에도 한 번씩 차오르던 눈물의 이유를 찾았다.


'올해까지만 쉬고, 내년에는 논문을 쓰겠다.'라고 말했지만, 나도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이 없었다.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부딪혀야 할지 고민하다가 또 도망갈까 봐 겁이 났다. 겨울까지만, 내년 2월까지만 쉬면 안 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봄까지만 여름까지만 이라며 그 계절들을 늘려갈까 봐 두려웠다. 나도 날 모르겠는 그런 내 미래의 시간들.

어찌 되었든 논문 쓰기 전까지는 영어공부를 해보자 다짐했는데, 그마저도 사실 마음 같지는 않았다. 꾸준히가 안되었달까나. 그림과 필사는 영어공부보다 꾸준히 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였다. 내게 있어 그림과 필사는 잘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고, 영어는 잘하고 싶은 거였다.

그림과 필사는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냥 하는 건데?'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영어는 '잘해야지! 잘하고 싶어! 잘하지?'라고 말을 하게 되는 그런 거였다. 그러니 꾸준함도 다를 수밖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는 그림과 필사는 그저 편히 생각날 때마다 하면 되는 거였고, 영어는 꾸준히 하지 못할 거면 시작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근데 시작조차 안 하면 아예 안 하고, 못하게 되는걸,, 물론 알고 있었다.)


아직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이를 알게 되자 생각을 바꿨다. 이 또한 그림과 필사처럼 하자.

부담 없이 그냥 하고 싶을 때 해. 매일이 아니라 2-3일에 한 번 하더라도 그게 이어지면 꾸준함인 거지 뭐.

그렇게 다짐하자 덜 부담스러워졌다. 여전히 논문을 쓰기 전에 어학성적을 만들고 싶은 나의 욕심과 나태는 서로 겨루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사라져 가는 11월에,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나의 여유에, 그마저도 가득 차버린 연말일정에 내 마음속 깊은 한 구석은 꽤나 조마조마했나 보다. 그동안 써놨던 논문 워드 파일을 열어볼까 다짐하다가도 파랗고 하얀 워드로고만 생각해도 심장이 조여 오는 답답함에 파일을 열어보기조차 두려워 고민하던 찰나 인정하기로 했다.


나, 잘하고 싶었구나.


내 논문을 잘 쓰고 싶었어.

그제야 연구실 언니의 말이 왜 내게 위로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늘 도망자 신세를 자처했던 내가 용기 내어 연구실 언니를 만났던 지난여름.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어 논문만 쓰면 되는 아스팔트 길이 놓인 줄 알았다는 내 말에 언니는 웃으며 '논문을 쓰는 게 가장 큰 근심 걱정이야. 다른 건 근심 걱정도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애초에 네가 너를 과대평가했어. 스스로 잘 쓸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돼.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게 너를 더 힘들게 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에겐 너무 위로가 되었던 말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워딩만 보면 이게 어떻게 위로가 되는 말일까 싶어 일기를 쓰며 피식 웃었지만, 언니는 정확히 나를 간파했던 거였다.


그동안 상담에서도 주변에서도 논문에 대해 너무 부담을 갖는 것 아니냐고,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했다. 그 말에 곧 죽어도 나는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서 남들처럼만 하고 싶다고 근데 나는 그마저도 안 되는 것 같다고 그래서 힘든 거라고 했다.


근데 그게 나만의 '잘'이었던 거지. 나는 최소한 나만의 기준대로라도 '잘'하고 싶었던 거다.


인정하고 나니 논문에 대한 긴장이 조금은 풀렸지만,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정하기까지.

인정을 했으니 그다음은 이 마음을 잘 달래주어야 한다. 그래야 잘 다룰 수 있을 거다. 이건 나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마 내년이 이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영어공부도, 논문도.


앞으로 나는 내 앞의 수많은 '잘'을 마주해야 할 거다. '잘'해야만 하는 순간들도 있을 거고. 내가 겪어온 시간들이 겪을 시간들이 켜켜이 잘 쌓여 잘 마주하길 바란다. 이 다짐 또한 '잘'이란 표현을 쓰는 나를 위해.


지난봄 무던히도 애를 썼던 나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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